만약 운동에 소질이 전혀 없는 내가 운동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까? 코딩을 전혀 할 줄 모르는데 AI 교육 커리큘럼을 짤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그건 우리가 일반적으로 교육은 '지식을 전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학습자에게 잘 전달하는 것'이 교육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틀린 말은 아니나 이것은 굉장히 고전적인 접근이다. 오늘날의 학습자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는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
Education의 개념은 Learning Experience Design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전자가 Training이나 Workshop과 같은 공급자(교수자) 중심의 관점이라면 후자는 수요자(학습자) 관점에서 '어떤 학습 경험을 하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가 포인트다. '무엇을 가르쳐 줄 것인가'라는 관점은 경직적이고 다양한 학습의 수요를 만족시킬 수 없다. 그래서 정답이 있는 문제보다 정답이 없는 문제,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보다는 협력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더 많은 현대 사회에서 정해진 답을 외우는 교육은 그 중요성이 많이 축소되었고, 학습 경험을 통해 스스로가 찾고자 하는 답을 발견하게 하도록 도와주는 것(Facilitate)이 더 크고 중요한 목적을 담고 있다.
그래서 현대의 교육은 내용 전문가보다 프로세스 전문가의 역할이 더 필요하다. 고기를 잡아 주기보다는 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주고 그것을 통해 스스로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육 전문가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자, 그런데 정말 해당 내용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하나도 없어도 교육 설계가 가능할까? 가능하다. 되려 기존과 전혀 다른 관점으로 경험 설계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점도 있다. 예를 들어 군사조직의 커뮤니케이션을 재즈밴드의 관점에서 배워보자면 어떨까같은 거다.
하지만 내용과의 fit을 맞추기 위해서는 해당 컨텐츠의 내용에 대한 전문성이 있으면 훨씬 더 좋은 것은 사실이다. 실무영역에서 노하우가 필요한 모자이크의 남은 퍼즐들을 맞춤으로 인해서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지름길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 내용을 교육설계시 자문해주는 전문가를 SME(Subject Matter Expert, 주제 전문가)라고 부른다.
SME에게 교육을 개발하라고 하는건 야구선수에게 구단주를 시켜줄테니 경영계획을 세워와라하는 느낌이다. 수술을 잘 하는 명의에게 병원운영계획을 가지고 오라는 느낌이기도 하다. 본인이 코딩을 잘 하는 것과 코딩 교육을 잘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역량인데, 고객들은 내가 좋은 실무 경력을 가지고 있으면 교육도 잘할 것이라 생각을 한다. 사실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교육(설계)전문가보다 SME에게 교육을 짜오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체육/의학과 경영학은 완전히 다른 분야인 것 처럼, 컴퓨터 공학과 교육학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오늘 경험해보지 않은 분야에 대한 과정 개발 의뢰를 받고 위 내용을 죽 설명 드렸다. 교육공학을 공부해보신 분이라면 상식적인 질문이다. "SME가 교육을 더 잘 설계하나요?". 우리의 고정관념을 바꾸기는 쉽지 않지만, 이 고정관념이 바뀌어야 우리의 학습도 더 효과성을 가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