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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Q Sep 04. 2024

군대에서 초코파이 먹은 썰

<플로스 원>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설탕은 코카인보다 여덟 배 더 중독성이 강하다! 설탕을 단번에 끊는 것은 눈길을 끌고 칭찬받을 만한 일이지만, 사실상 너무 힘든 과제다. 

-설탕 중독 中-


나는 원래 단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했었다. 초코파이도 내 돈 주고 사 먹어본 적이 없고, 커피에 시럽은 절대 넣지 않는다. 그러던 내가 군대에 갔을 때 이야기다. 아참, 군대라고 하긴 좀 그렇고 공익근무를 위해 35사단 훈련소에 갔을 때 이야기다.


여름이었다. 아니, 겨울이었다. 유독 추운 겨울이라고 뉴스에 매일같이 한파 관련 뉴스가 나왔더랬다. 공기마저 꽁꽁 얼어붙었던 새벽에 일어나서 연병장을 돌고 하루 종일 각개전투, 사격훈련, 유격훈련 등이 진행되었다. 그렇게 고단한 나날이었는데도 입맛은 없었다. 군짬밥이 나와 맞지 않았다. 똥국과 군대리아보다 내 몸이 더 간절하게 원하는 게 있었다. 그것은 당! 단 것이 먹고 싶었다. 단음식은 입에도 안 대던 내가 단 것이 먹고 싶다니...... 우리는 흔히 설탕이나 사탕, 초콜릿, 탕후루나 초코바를 먹어야 당을 먹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가 먹는 거의 모든 음식에 당이 들어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당 과잉에 길들여진 것이다. 그래서 당이 부족하면 우리 몸은 간절하게, 코카인보다 더 간절하게 설탕을 찾게 되는 것이다. 


군대에서 절에 가게 되었다. 희망자만 가면 되는데 초코파이를 준다고 하니 모든 훈련병이 절로 향했다. 초코파이를 준다고 하면 이슬람사원이라도 갈 기세였으니까. 다행히도 스님들께서는 불경을 읊으라고 하거나 절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보여주는 영상을 보다가 영상시청이 끝나면 초코파이를 받을 수 있었다. 역시 스님들은 관대해. 영상 시청이 끝나자 조교가 훈련병들을 향해 목청껏 소리 질렀다.

"자자~ 초코파이 줄 테니깐 2열 종대로 서!"

초코파이를 향한 순수한 집념으로 순식간에 2열 종대 대열이 맞춰졌다. 그 순수한 집념에는 당을 향한 광기도 섞여있었다. 선착순으로 초코파이를 주는지라 조금이라도 더 앞에 서려고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누구에게도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들이 지하철 변태처럼 앞뒤로 밀착하기 시작했고, 그 광기의 대열에서 탈락한 나는 이 쪽 줄도 아니고 저 쪽 줄도 아닌 애매한 자리에 서게 되었다. 초코파이 배급이 앞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초코파이를 받은 훈련병들은 은혜라도 받은 표정으로 봉지를 뜯어 한 입에 집어넣었다. 차례차례 배급되며 내 앞까지 순서가 오는 동안 불안감이 점점 짙어졌다. 나는 왼쪽 줄도 아니고 오른쪽 줄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양쪽에서 모두 패씽 되는 처참한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저기요~ 저 초코파이를 못 받았는데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했다. 내 나이가 29살이었고 초코파이를 나눠주던 조교는 23살이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초코파이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나와 같은 내무반을 쓰던 동생이 대신 용기를 내어 말했기 때문이다. 

"저기, 최직규 훈련병이 초코파이를 못 받았습니다!"

조교는 내 앞으로 다가와 똑바로 눈을 맞추며, 따끔하게 혼을 내듯이 물었다. 

"왜 초코파이를 못 받았나?"

"줄.....줄을.... 잘 못 섰습니다..."

"다음부터 줄 똑바로 설 수 있겠어?"

조교는 초코파이 봉지를 집어 들고 눈 앞에서 흔들었다. 

"네"

수치심 같은 건 없었다. '다음에는 줄을 잘 서야지~'라는 다짐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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