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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Q May 22. 2024

우리가 친하다고 생각해?

[오래 준비해온 대답]의 옆길로 샌 독후감


막 십대로 들어선 나는 황량한 아파트 숲에서 무엇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르면서 마음을 '나눌' 친구가 없음을 아쉬워했다. 그렇게 육 년이 흘러갔다. 분명 나에게도 정해진 소속이 있었지만 거기에서 어떤 일체감을 느낄 수는 없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자 서울에 올라온 후 처음으로 한 집단에 받아들여진, 그들 모두와 하나가 된 듯한 강렬한 감정의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오래 준비해온 대답(김영하, 복복서가) 中-




"우리가 친하다고 생각해?" K가 악의 없이 뱉은 한마디가 무안하여 L은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왁자지껄 떠들며 술을 마시던 일행들 역시 못 들은 척하기도, 그렇다고 상황을 수습하기도 엄두가 나지 않아 있지도 않은 먼 산을 바라봐야 했다. 과대표들로 이루어진 일종의 운동권 모임이었다. 그렇다고 화염병을 만들거나 음침한 지하실에 모여 체제 전복을 모의하는 그럴듯한 운동권은 아니었다. 그냥 전경이랑 몇 번 몸싸움을 한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시위의 약간은 아찔한 상황들이 우리에게 묘한 일체감을 부여했었나 보다. 그런 시간을 함께한 L은 충분히 "우린 친하잖아!"라는 말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전경들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짠 스크럼이 물리적인 것에서 심리적인 것으로 전이되었던 탓일까. 나도 은근 우리가 친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K의 말이 나를 향한 것처럼 낯이 뜨거웠었다.  친하다는 기준이 뭘까? 나에게 친한 친구가 몇이나 될까? 어찌 보면 유아적일 수 있는 고민을 그 날 이후로 계속해서 품고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는 드러나고야 말 무안함이 두려워 방어적으로 사람을 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느끼지 않을 무안함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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