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일까. 이제 와 누군가 내게 행복이 뭐냐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불행이 없는 상태."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中-
어제 광고를 하나 봤는데 거기서 그랬다.
<복이랑 행복이랑 뭐가 다른 줄 아세요? 복은 받는 거고, 행복은 하는 거래요.>
누가 날 행복하게 해 줄 순 없다. 행복은 <하는 것>이니까. 누군가는 샤넬백을 '받고'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고, 누군가는 보세 가방을 '받고'도 행복'할' 수 있다. 행복의 주체는 나다.
그런데 이 불행이라는 놈은 참 애매하다. 주체가 내가 될 수도 있고 타인이 될 수도 있다. 난 원하지 않는데 불행을 던져주고 가기도 하고, 행복을 강탈당하기도 한다. 물론 스스로 내 행복을 걷어차버리는 경우도 있다. 표절을 좀 해보자면 '행복은 한 가지 모습인데, 불행은 여러 가지 모습이다.' 불행을 만드는 건 수도 없이 많다. 경쟁, 차별, 비교, 가난, 건강문제, 갈등, 불안정, 트라우마......
작가는 불행이 없는 상태야 말로 행복이라고 했다. 불행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기엔 불행의 가짓수는 너무 많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