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내가 천재라고 생각하셨다. 아니 만능이라고 믿으셨다.
초등학교 때 우리 집은 등유 보일러로 난방을 했다. 당시 보일러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터라 점화기에 기름때가 끼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은 청소해야 했고, 아버지는 그 역할을 나에게 부여했다. 내 키보다 큰 보일러 본체를 분해해 점화기 기름때 청소를 했다. 내가 우리 아들만 한때의 일이다. 지금 우리 아들은 보일러 온오프 버튼을 누를 줄도 모른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경운기를 몰았다. 경운기 운전 기술은 기술과 힘의 콜로보로 완성된다. 풋브레이크가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자칫 방심하면 큰 사고가 난다. 2021년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근 5년간 경운기 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488명, 부상자가 5,500명에 이른다고 했다. 아버지는 만능인 내가 당연히 경운기를 능숙하게 몰 줄 알고 혼자 일을 내보냈다. 경운기는 오르막과 내리막에서 운전법이 반대였는데, 익숙지 않았던 나는 내리막에서 완벽하게 반대편 클러치를 잡는 바람에 개골창에 경운기를 꼬라박았다.
이 나이를 먹고 보니 왜 아버지께서 나를 만능으로 생각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요즘 같아선 어디 동네 바보형이 따로 없을 정도로 할 줄 아는 것도, 능숙한 것도, 전문적인 것도 없다. 아버지 덕분에 내가 만능인 줄 착각하고 살아서 그런지 그걸 부정하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좀 마음이 편해졌다. 무엇이든 잘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고 나니 마음이 좀 편하다. 동네 바보형의 포지션이 훨씬 행복하다.
아 참,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날 만능으로 생각했다기보다, 만능으로 부리고 싶으셨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