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문이 없었다. 자그마한 판자때기 하나가 중요 부위를 가려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두루마리 화장지가 있을 리 만무했다. 실제로 본 적도 없었다. TV 광고로만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 '우리 집 강아지 뽀삐~'
뒤처리를 책임지는 건 풀이나 낙엽이 아니고 다행히도 신문지였다. 읽고 난 서울신문이나 농민신문을 손바닥만한 크기로 잘라 바구니에 담아두고 사용했다. 보통은 큰일을 보는 동안 신문지를 양손으로 비벼 최대한 보드랍게 만드는 작업에 열중한다. 비비지 않은 신문이 괄약근에 닿으면 그 빳빳한 촉감이 소름 돋는다. 매끄러운 신문지 표면이 그곳을 제대로 닦지 못하고 미끄러지듯 스쳐 지나가면 여러모로 낭패다. 그래서 신문지를 비벼 표면을 부드럽게 만들고, 올록볼록 엠보싱 상태로 최적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작업을 하지 않았다. 잘린 신문지 조각에서 연재소설을 읽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신문사마다 대하소설 하나쯤은 연재하고 있었다. 조정래 작가는 한국일보에 '아리랑'을, 박경리 작가는 문화일보에 '토지'를 연재했다. 우리 집에서 구독하던 서울신문에도 연재소설이 있었지만, 제목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제멋대로 잘린 신문지라서 내용을 완벽하게 이어 읽을 순 없었지만, 꽤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문제는 연재소설엔 늘 19금 내용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독자를 위한 스페셜 서비스 같은 거였던 것 같은데, 그 부분을 특히나 공들여 읽었고 종종 호주머니에 킾해두었다가 지식의 내재화를 위해 반복 독서를 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나는 성조숙증과 2차 성징이 빨리 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내 키는 다 커버렸다. '우리 집 강아지 뽀삐'만 있었어도 180cm까지는 클 수 있는 거였는데…. 빌어먹을 연재소설 덕분에 평생 바짓단을 수선하며 살아야 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