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탐구생활

by 초이조

어린 시절, 여름과 겨울을 간절히 기다렸다. 그 이유는 바로 방학이 있기 때문이다. 방학 때 어떻게 보낼지 생활계획표를 자다 보면 모두가 세상 누구보다 바른생활 어린이 었다. 방학을 할 때 다른 것보다 하기 싫었던 게 하나 있다. 그건 바로 탐구생활.


매일 꾸준히 하면 아무 문제없지만, 방학에 그걸 매일 한다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해야지, 내일 못하면 모레 해야지. 방학이 무한한 것처럼 지내다가 개학 1주일 전에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야 난리 법석을 부렸다. 그래서 항상 내 탐구생활은 얇았다. 같은 반 친구들 것은 이것저것 엄청 붙이고 열심히 한 흔적이 다분한데, 내 거는 누가 봐도 그저 완성에 초첨을 두고 급하게 마무리한 게 티가 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방학 탐구생활은 다양한 분야에 대한 탐구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좋은 교재였다. 그때는 그저 하기 싫은 숙제였기에 거들떠보기도 너무 싫었지만, 생각해 보면 자연, 생활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많은 것을 알아보라는 깊은 뜻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요즘 들어 가끔 그때 탐구생활을 열심히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만약 그랬다면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관찰하고 탐구하는 습관을 키웠지 않았을까? 그 습관이 있었더라면 나 자신에 대한 탐구도 잘해두지 않았을까?


새로운 환경에 놓인 지금, 나도 모르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분명 머리가 어디에 닿아도 잘만 자는 줄 알았는데, 낯선 곳에서는 자주 깨면서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고 놀랐다. 그리고 소리에 예민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바깥 기차소리며, 윗집에서 나는 걷는 소리 등 여러 소리를 잘 듣는 것도 최근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전혀 몰랐다. 내가 이런 사람인지.


어릴 때 못다 한 탐구생활을 이제 하나씩 해봐야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후회 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