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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방향

by 초이조


KTX가 처음 나왔을 때 좌석은 무조건 정방향을 고집했다. 이유는 역방향은 멀미가 난다였다. 그러다 정방향이 만석일 때는 어쩔 수 없이 역방향을 탔다. 딱히, 멀미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정방향에 더 정이 갔다. 목적지라고 정해둔 곳에 점점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는 대중교통 버스, 트램, S반이 잘 되어 있다. 어디를 가든 이 셋 중에 하나는 이용하는 편이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좌석이 정방향뿐만 아니라, 역방향도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으레 그랬던 것처럼 정방향 좌석에만 앉았다. 그러다 우연히 역방향으로 앉고 난 날 이후, 정방향과는 전현 다른 역방향만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역방향은 위로이다. 자취생활에 지칠 때쯤에 집에 가곤 했다. 배부르고 등따시게 지내다가 다시 학교로 돌어가야 하는 날이면 부모님은 조심히 가라며 버스 터미널까지 데려다주셨다. 버스가 종착지를 향해 가기 위해 플랫폼에서 후진을 할 때면 조심히 가라며 손을 흔들어 주셨다. 그럼 나도 열심히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다음을 기약했다.


그렇게 부모님은 한결같이 그곳에 계셨고 나는 한결같이 떠났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위로가 되는 방향으로 버스가 움직이고 있었음을. 그때 느꼈던 감정처럼 트램을 타고 역방향을 바깥세상을 보고 있노라면, 풍경이 나를 배웅해 주는 기분이 든다.


’ 잘 가. 나는 계속 여기 있을 거야. 또 오렴.‘이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아마 그 시절 부모님이 말하진 않으셨지만, 흔드는 손끝에 담아 내게 보내온 말처럼.


종착지를 향해 앞을 향할 때는 저 멀리 보이는 것이 점점 가까워지며 최종적으로 도착하면 안도감과 성취감 같은 것이 있다면, 기착지를 두고 멀어질 때는 언제나 그곳에 있을 거라는 믿음과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는 불확실성, 그리고 멀어지다가 더 이상 닿을 수 없음에 대한 애틋함이 있다.


가끔 외롭고 힘들 때는 역방향으로 타보자.

그곳에 매일같이 있는 풍경이 나를 배웅해 줄 것이다. 그들의 배웅에 다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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