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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하나가 뭐라고

by 초이조


흔히들 말한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다고.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다고.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평범한 생활에서 벗어나 먼 곳으로 떠나는 여행을 가서거나 비싸고 좋은 것을 가짐으로써 행복함을 느끼기도 하기에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다.


그런 내가 행복함은 별거 아닌 거에서 온다는 걸 느낀 어느 날이었다.


문구 덕후까지는 아니지만, 끄적이거나 메모하는 걸 좋아하서 펜과 종이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펜을 특히 좋아한다. 한때 사쿠라펜, 파이롯 하이테크펜에 환호했고 무인양품 펜도 즐겨 쓰다가 라미 만년필도 써보며 무궁무진한 펜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내가 선호하는 펜 스타일은 글을 쓸 때 너무 두껍지고 얇지도 않은 두께여야 하며 글을 쓸 때 끊어짐 없이 부드럽게 쓰여야 한다. 손으로 잡았을 때는 편안하게 잡히면서 오른쪽 세 번째 손가락에 부담을 덜 주어야 한다. 아직 내게 완벽한 펜을 찾지 못했기에 아직도 펜 탐험을 하는 중이다.


그래서 가끔 일본여행을 갈 때면 대표적인 문구점인 이토야, 로프트, 도큐핸즈에 꼭 들려 펜들을 구경하는 게 나만의 여행 루트이기도 하다. 그리고 남들은 일본 가면 꼭 사 와야 한다는 의류, 신발, 손수건, 과자, 약 같은 걸 살 때 나는 편지지, 펜을 왕창 사 온다. 일본 펜 중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것들도 있지만, 가격적인 면에서나 다양성 측면에서 현지에서 사는 것만큼 즐거운 건 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마음에 드는데 펜인데 다 쓰거나 잃어버리면 다시 구하기까지 쉽지 않을 때도 있어서 어쩔 수 없는 거라며 자기 합리화를 한다. 그렇게 사온 펜들은 매일같이 열심히 쓴다. 펜이란 모름지기 써야 의미가 있고 또 다양한 신제품이 나왔을 때 살 수 있으니까라는 마음으로.


그중에서도 코로나 이전부터 마음에 들어서 열심히 쓰고 펜이 있다. 이 또한 여러 색깔을 사 와서 기분이나 분위기에 맞게 바꿔 쓰고 있다. 그러던 중 갈색 펜을 잃어버렸다. 그 펜이 딱 그랬다. 하나밖에 없는 펜이었다. 아무리 여기저기 찾아봐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필통에는 갈색 펜에 들어가기를 기다리는 리필심만 덩그러니 있어 이걸 어떡하나 싶었다. 잘 챙기지 못한 나에 대한 자책과 함께.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손톱깎기를 넣어둔 파우치에 생뚱맞게 있는 것이 아닌가. 잃어버린 줄 알고 있었던 펜이 떡하니 있으니 너무 반가워 두 손을 소중히 펜을 감싸고 하늘에 감사함을 표했다.


"오오오오오. 드디어 찾았다. 앗싸!"


그러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행복할 일이지. 하하하."


한바탕 소동 아닌 소동이 지나고 나니, 평범한 일상 속에서 행복이 있다는 행복론에 대해 거의 동의하게 되었다. 미슐랭 쓰리스타에서 고급진 요리를 먹은 것도 아니고 그저 100엔짜리 펜 하나일 뿐인데,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함을 느끼는 거 보면 행복이란 거 별 거 아닌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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