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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정의

by 초이조


대학 시절, 내게는 반짝이라는 존재가 있었다. 그 시작은 친구로부터 시작했다. 친구는 함께 강의를 듣는 이들 중에서 눈에 띄는(정확히는 계속 눈길이 가는) 대상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존재를 ‘반짝이’라고 명명했다. 한동안 친구의 반짝이는 우리 대화의 매번 등장하는 주요 주제였다.


그러던 중, 내게도 반짝이가 생겼다. 대상은 복학한 선배. 처음에는 동경 80, 장난 20으로 시작했다가 점점 일이 커졌다. 현재 기준으로 결과적으로는 새드엔딩이지만, 나의 반짝이 덕분에 내 대학생활은 풍부해졌다. 한 글자 한 글자 엄청 신경 써서 문자를 보내던 긴장감, 답장을 받을 때의 설렘, 서로의 차이로 인한 힘듦,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 등 수많은 감정을 느꼈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때는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제대로 정의를 내릴 수가 없었다. 행복, 즐거움, 고마움 등 평소의 내가 되거나 그보다 웃고 있으면 좋은 것, 지침, 상처, 화남 등 내가 내가 아니게 되거나 지하 200m 수준으로 땅 파고 들어가면 나쁜 것, 이렇게 두 가지로만 감정을 정의하였다.


그 이후에도 오랜 친구와의 멀어짐, 연애와 이별과 같은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나의 감정은 여전히 좋거나 나쁘거나 둘 중 하나로 이어졌다. 그러나 감정에 대해 그렇게 단순하게 정의 내릴 수 없으며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이 말인 즉,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들이 나를 이루고 있다는 말이다. 지금 이 순간, 수백만 가지의 감정이 얽히고설켜 나를 구성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 보면 나의 감정 정의는 매우 단순하고 너무나도 단편적이구나 싶다. 좋으면 어떻게 좋은지, 왜 좋은지, 나쁜 건 무엇이 나쁜지 등에 따라 감정의 색, 온도, 질감 모든 게 다를 텐데 말이다.

나만의 감정 정의법를 만들어봐야겠다. 요리를 좋아하니깐 재료, 향신료 같은 거에 빗대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감정 정의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감이 잡히진 않지만, 더 이상 이분법으로 정의 내리는 실수는 하지 말아야겠다. 좀 더 풍요로울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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