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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나기 준비

by 초이조


살이 에이는 겨울이 살랑거리는 따듯한 바람에게 자리를 내준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제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기 시작한다. 추위와 더위 중 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더위를 택하는 편인데, 해가 지날수록 이제는 추위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점점 더위가 심해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독일의 여름은 나름 버틸만할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아직 제대로 된 여름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지금까지 느낀 바로는 그렇다. 무더위 속에 습함이 가득한 우리나라 여름과는 다르게 독일은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은 같지만, 습하지는 않은 편이다. 그래서 아무리 덥더라도 나무 아래 그늘로 들어서면 선선한 바람이 불어 더위를 한숨 식힐 수 있다.


그래서일까? 독일 집에는 에어컨이 없는 경우가 많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선풍기 하나가 전부다. 집을 구할 때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바닥난방이 되는 집이 1순위였고, 한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기 위해 에어컨이 있는 집이 2순위였다. 그러나 곧 우선순위는 그저 헛된 꿈이었음을 깨달았다.


에어컨 없는 여름을 보낼 줄을 몰랐지만, 상황이 그러하니 올여름은 그렇게 지내보려, 정확히는 버텨보려 한다. 한 여름 소재인 리넨으로 된 긴 파자마 대신 평소 절대 입지 않았던 무릎이 보이는 반바지로 된 파자마를 주문하였다. 그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없는 여름은 상상할 수 없으니 얼음틀도 하나 샀다. 그리고 들고 다닐 가벼운 물병도 구매 완료.


이번 여름은 새로 산 리넨 반바지 파자마를 입고 열어둔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약간 따뜻한 바람은 선풍기 바람으로 이겨내고 여름날이면 숟가락으로 퍼먹던 커다란 수박 반통 대신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납작 봉숭아를 한 입 가득 베어 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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