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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파리

by 초이조


가끔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그때마다 나는 두 가지를 말한다. 하나는 강된장을 품은 호박잎, 다른 하나는 콩잎이라고.


단일 메뉴라기보다는 밥맛을 한껏 올려주는 반찬에 가깝지만, 나는 이 두 개가 최애 음식이다.


어렸을 때, 건강식 위주의 식단을 지향한 어머니와 외할머니와 살았던 나는 냉동식품은 쉽사리 먹을 수 없었다. 너겟, 미니 돈가스, 비엔나소시지 같은 것은 절대 집에서 접할 수 없었다. 다만, 학교에서 친구들과의 점심시간에 서로의 도시락을 나누던 그 시절, 친구가 주는 별미로 즐기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집에서는 인공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 위주로 먹었는데, 여름이면 어김없이 먹었던 것이 바로 호박잎이었다. 잘 쪄진 호박잎을 손바닥에 잘 편 후, 따뜻한 밥 한 숟갈에 강된장을 약간 올려 야무지게 싸서 입으로 넣어 오물오물 먹는다. 무더운 여름, 없던 입맛도 되살아나는 마법을 경험한다.


그 당시에는 몰랐다. 보드라운 호박잎을 즐기기 위해서는 억센 부분을 일일이 다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첫 자취를 하며 호박잎을 먹으려고 했을 때, 씻어서 그냥 쪘더니 까슬하고 억센 줄기 때문에 호박잎이 문제라는 섣부른 결론을 내렸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여름날 입맛 잃은 딸, 혹은 손녀에게 부드러운 호박잎을 맛 보여주기 위해 그들은 선풍기 아래에서 시간과 정성을 들여 까칠하고 억센 부분들을 하나하나 제거했던 것이다. 다 크고 나서야 내가 그동안 먹었던 호박잎은 그들의 애정 표현이었음을 깨달았다.


콩잎도 그들이 내게 보여준 또다른 사랑이었다. 이쁘게 단풍 든 콩잎 한 장을 갓 지은 쌀밥 위에 올려서 한 입 크기로 싸서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콩잎을 삭힌 탓에 이를 꺼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게 콩잎은 최소 밥 두 세 공기는 뚝딱할 수 있는 마성의 음식이다. 오죽하면 콩잎을 파는 부산에 있는 반찬집을 수소문해서 배달해서 먹겠는가.


콩잎은 내게 두 가지 사실을 알려 주었다. 전국구 음식이 아니라는 점과 호박잎과는 다르게 만드는 게 쉽지 않다는 것.


어렸을 때부터 항상 밥상 위에 있던 콩잎이었기에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학업 문제로 서울로 올라온 이후, 내가 먹었던 음식이 경상도에서 먹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쩐지 서울 어느 반찬집을 가도 찾을 수 없더라니.


보이지 않기에 더욱 먹고 싶은 갈망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콩잎을 한 번 도전해 보려고 했지만, 레시피를 보고 바로 포기했다. 내가 먹던 것은 단풍 콩잎인데 일단 준비물인 삭힌 콩잎부터 난관이었다. 항상 다 만들어져서 먹기만 하다 보니 전혀 몰랐다. 콩잎을 삭히고 씻고 삶고 헹구고 그러고 나서 장마다 양념을 골고루 발라야 하는,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말이다(콩잎 장아찌, 콩잎 김치, 단풍 콩잎 등등 다양한 표현들이 있지만, 내게는 그냥 콩잎이다.).


화려하거나 값비싼 음식은 아니지만 호박잎과 콩잎은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 미래에도 나의 최애 음식이자, 살면서 내가 받은 최고의 애정표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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