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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을 느끼다

by 초이조


늦여름 밤에 산책하며 느끼는 바람이 좋아 무작정 집을 나설 때가 종종 있다. 지금 독일 날씨가 딱 그렇다. 산책을 할까 하다가 엘베강에서 Filmnächte를 하고 있어서 독일 친구랑 영화를 보기로 했다.


독일은 영화 상영시 대부분 독일어로 더빙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볼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건너왔지만, 역시나 독일어 더빙. 독알못이지만 그래도 액션 영화니깐, 대화보다는 볼거리가 더 많을 테니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일단 보기로 했다. 사실은 야외에서 무지 큰 스크린으로 보는 경험을 또 언제 해보겠냐 싶어서가 가장 큰 이유였다.


어쩌다 보니 친구 엄마와도 함께했다. 친구 엄마는 독어만 가능한 독일인이고 나는 한국어와 드문드문 영어, 독어는 아침인사와 고맙다는 말정도만 아는 독어 생초보라 친구가 중간에서 열심히 통역사 역할을 자청했다.


그래도 매일 20분씩 듀오링고를 한 덕분에 '나는 누구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까지 서툰 독일어로 하고 아주 짤막한 질문 두세 개도 겨우 겨우 한 후, 나머지는 기나긴 침묵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딱히 그 침묵이 힘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친구 엄마와 헤어지는 순간. 그녀는 나를 안아주며 독어로 뭐라 뭐라 말했다. 친구는 다음에 꼭 보자는 말이라고 통역해 주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녀와의 포옹.


그녀는 나를 꽉 안아주었다.

찰나의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전해지는 따뜻한 마음을 말이다. 타국에서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겠지만, 잘 지내라는 응원과 또 보자는 그녀의 진심이 말이 아닌 나를 꽉 끌어안는 그녀의 두 팔을 통해 느껴졌다.


영화 보기 전 그녀와의 침묵이 어색하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지 않았을까? 딸의 외국인 친구에게 진심을 전하고 싶었던 마음이 자연스레 전해져서 말이다.


든든한 응원군이 생긴 듯한 기분이 들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따뜻했던 잊지 못할 쌀쌀한 늦여름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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