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기고 있던 독일에 대한 이미지는 모든 것이 미리 준비하고 칼같이 정해진대로 진행되고 융통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그런 것이 있었다. 와서 생활한 지 어언 6개월 차. 계획형이 지내기에는 크게 불편함이 없었기에 불만 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자마자, 독일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히 바뀌는 일을 겪었다.
레겐스부르크에서 기차를 타고 돌아오던 최근 어느 날. 직행이 없어서 최소한으로 환승하는 기차를 타고 룰루랄라 돌아오는 길이었다. 환승 시간은 20여분 남짓. 도이치반(DB)이 제시간에 도착하는 법이 없긴 하지만, 내가 타고 가는 기차의 종착역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기차로 출발하는 거라 괜찮은 여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환승역 바로 전역에서 기차가 움직이지 않는 게 아닌가. 5분이 흐르고 10분이 흐르고 하염없이 시간이 흘렀다. 결국 내가 환승하려던 기차는 떠났고, 그나마 다행인 건 다음 기차도 있었기에 괜찮다고 주문을 외우며 객실 내에서 기차가 움직이기만을 기다렸다.
시간은 흐르고 40분 정도 지났을 때였나 방송이 나오더니 갑자기 사람들이 주섬주섬 짐을 가지고 내리는 것이 아닌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눈치껏 나도 짐을 챙겨 내렸다. 상황이 어떤지 알고 싶으나, 역무원은 이미 다른 독일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편안하게 주말 저녁을 즐기고 있을 지인에게 연락하여 상황을 알려주니, 선로에서 어떤 사고로 인해 모든 기차가 올스톱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가끔 장난으로 말하던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딘가가 현실이 된 것이다.
지인이 역무원에게 상황을 물어봐주겠다고 하고 겨우겨우 역무원 한 분을 붙잡고 무작정 폰을 귀에 가져다 대었다. 몇 분이 지난 후, 당케로 끝나는 통화 후, 상황에 대해 통역을 정리하자면, 대체 편을 마련할 거긴 한데 언제 될지 모른다는 얘기. 결론은 현재로서는 당장 대책 없음이었다. 이 무슨...
내가 생각했던 독일은 이런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서 고객들의 불편을 해결해 줄 주 알았는데 현실은 전혀 아니었다. 언제 올지도 모를 버스 대체 편을 기다릴 것인가. 기다린다 해도 내가 있는 곳까지 데려다줄 것도 아니라면 결국 다른 기차역에서 새벽 첫 기차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 기차가 멈춘 동네 근처 호텔을 갈까 했지만, 말로만 호텔인 곳을 100유로 넘게 내기도 아까웠다. 정말 민폐인 것을 알지만, 다시 레겐스부르크의 지인 집으로 돌아가는 걸 택했고, 감사하게도 1시간이 넘는 역으로 데리러 와주셨다. 그때가 이미 밤 10시가 넘었다.
내 멘털이 딱히 강하다고도 약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평균은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말도 통하지 않고 살면서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놓이니 멘털을 잡고 있기가 힘들었다. 그런 나를 알았는지 독일인 친구는 It is common thing이라고 했다. 자기도 겪어봤고 자기 친구도 겪어봤다고. 이게 어떻게 보통의 일일 수가 있다는 건가? 이게 태연하게 받아 들 수 있는 일이라고?
독일 생활에 꽤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전혀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일상에 젖어 들어 평화롭게 지낼까 봐 이런 특별한 일도 생기는 거겠지? 다음에 이보다 더 스펙터클한 일이 생길까?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충분히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 여하튼, 매일매일 우당탕탕하지만 않기를. 내 멘털은 소중하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