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을 정신없이 지내다가 잠시 바쁜 현실을 한 발짝 떨어져서 지내고 있는 나는 행운아이다.
단순히 여유로워진 생활 때문만은 아니다. 뭐 먹을까? 하면 뭐든 다 좋아라고 답하고 이거랑 저거 중에 어느 게 좋아?라고 물어보면 난 다 좋아!라고 외치며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입장을 고수하던 내가 나의 취향을 하나씩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느끼는 중이다.
갈등과 싸움이 싫고 평화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어쩌면 우유부단의 끝판왕인 자신을 평화주의자로 포장한 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지금의 나는 그때와는 꽤 달라지는 중이다. 물론, 아직 싫은 건 덜 명확하지만,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말하거나 표현하는 데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좋아하는 걸 표현하는 게 어려웠던 건 사실 내게는 좋지만 상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내게 여행지 추천해 줘, 어디 음식점이 맛있어?라고 물어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는 나도 추천받았던 선택지를 알려주었다. 나의 취향은 마이너 하다는 핑계를 대며 말이다.
아마 나의 취향을 확실하다는 건 상대에게 불편함, 혹은 실망감을 주지 않을까 하는, 내가 아닌 상대를 우선했기 때문이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나의 취향을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나의 색을 조금씩 잃어갔나 보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어쩌다 보니 하게 된 유럽살이 중에 더 늦지 않게 나 자신의 색이 더 바래지기 전에 하나씩 채색 중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색들로 채워질지는 몰라서 더 기대되는 나의 취향. 그래도 하나 바라는 건 너무 튀지는 않았으면 하는 보통 사람으로서의 바람이 있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