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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튼

by 초이조


타국 생활한 지도 어언 6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어버버 하던 초창기와는 달리, 어느 정도 생활에 적응하고 동네의 익숙함은 안정감을 준다. 20대에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로망 하나만 가지고 떠났던 영국에서의 생활은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이후 여행이 아닌 생활을 해외에서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것 중에 하나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으나, 시간이 흘러 어느덧 먹을 만큼 먹은 나이가 되니 다시 한번 불가능에 도전하고 싶었고 그렇게 독일로의 1년 살이를 하고 있다. 젊은 시절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주 잘 지내는 걸 보며 가족, 친구 모두가 다행이라고 한다. 사실 가장 놀라고 안도하는 건 나 자신이다. 어떻게 이토록 잘 지낼 수 있지? 싶을 정도로 잘 적응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즐거운 저녁 시간, 독일 온 후로 처음으로 눈물을 터트렸다.


어떤 가수가 노래를 부르는 걸 보며 눈물을 글썽인 적은 전혀 없고 아무리 슬픈 영화를 보더라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내 눈물은 메말랐나 싶을 정도로 울 일도 딱히 없어 눈물샘이 제 기능을 하고는 있는지 항상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터진다고?


사건의 시작은 오빠의 베프인 모 오빠네에서 저녁 시간이었다.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약간의 알코올이 함께한 저녁 자리에서 나는 좋은 오빠를 둔 덕에 항상 챙겨주시는 모 오빠와 와이프 언니 덕분에 독일에서 외롭지 않게 잘 지내고 있다며 연신 감사함을 표현했다. 그 자리에 없는 친오빠와의 친구 관계에 대해 의문을 가지며 느긋하게 저녁을 즐겼고 그 시간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그러다 오빠는 내게 해주고픈 말이 있다고 했다. 조언이든 충고든 뭐든 좋으니 하시라고 했다. 그때 오빠가 내게 건넨 한 마디는 나를 완전 무장해제시켰다.


“난 네가 너의 행복을 제일 첫 번째로 하면 좋겠어.”


왜였을까?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던 말에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다. 이유는 모르겠다. 이걸 쓰고 있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냥 울컥했고 나도 모르는 깊은 어딘가에 있는 또 다른 나에게 해주고픈 말이었던 것 같다. 나를 위해, 자신을 잘 보살펴주고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나보다 다른 이를 더 우선했었나 보다. 그리고 그걸 누군가 알아봐 주길 바라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오빠는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오빠는 여러 번 같은 말을 반복하며 나의 행복을 꼭 첫 번째로 하라고 당부했다. 한번 울컥한 내 마음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지만, 이내 다른 화제로 대화가 이어지면서 대성통곡하는 남사스러운 상황은 다행히 막을 수 있었다.


자정이 넘어 끝난 저녁시간.


내게도 울음버튼이 있었구나 싶었다. 있었다. 나도 모르게 말이다.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다시는 그 버튼이 작동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차근차근 그 누구도 아닌 나의 행복을 첫 번째로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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