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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점짜리 선택

by 초이조


지금은 수만 번 이상의 선택의 결과이다. 세상에 태어난 이후 선택을 안 한 적이 있을까? 아침에 알람 소리를 듣고 5분만 더 잘지 말지를 선택하고 점심은 무엇을 먹을지 세상 심각하게 고민한다.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에어팟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은 나만의 BGM이 되어 오늘은 저녁 먹으면서 무엇을 봐야 하루 마무리를 잘했다고 할 수 있을지 또 고민한. 이렇듯 하루에도 수십 번 선택의 기로에 서는 것이 지금 내가 살아있음의 반증이다.


이런 수 만 번의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깨닫다 보면 내 선택에 대한 점수를 가끔 매기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중에서 0점에 가까운 1점짜리 선택이 있었다.


바야흐로, 대학 입시 시절.


수능을 야무지게 후루룩 쩝쩝 말아먹었다. 딱히 꿈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 당시 사범대, 교대는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자랑하던 때였기에 1곳은 그래도 소신지원을 하고자 마음먹었다. 떨어질 것을 이미 알았지만, 그래도 아주 작은 희망을 품었던 것 같다. 결과는? 당연히 불합격. 결과를 예감하고 있어서 그랬는지 그다지 큰 타격은 없었다.


2곳을 더 지원해야 하는 그때, 나는 이과생이었기에 공대를 지원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러나 무엇을 전공하는가에서 고민이 되었다. 그러다 나의 선택은 기계공학이 아니라 대뜸 항공우주공학이었다.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정확히는 오빠가 난리가 났다. 이미 공대생의 길을 걷고 있던 오빠는 내 선택인 기계공학이 아닌 살면서 여태 한 번도 입밖에 꺼낸 적도 없는 항공우주공학에 대해 납득을 할 수가 없었다. 평소 착하디 착하고 항상 응원해 주던, 반대라는 걸 해본 적 없던 오빠는 갑자기 왜? 언제부터 관심이 있었느냐, 거기가 무엇을 하는지는 알고 있냐? 등등 물음표 살인마가 되었고 나의 마음을 바꾸고 싶었는지 당시 해당 분야를 전공하고 있는 동기 언니와 얘기하는 시간도 만들어 주었다.


솔직히, 그때 나도 내가 왜 그 길을 가겠다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도 모르겠다. 그냥 무난한 게 싫었다는 게 제일 정확할 것 같다. 공대하면 기계공학. 너무나 평범하고 전해진 길 같아 보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이너 감성이 그때도 발현되었던 게 아닐까 싶다.


결과적으로 반대를 무릅쓰고 항공우주공학으로 간 나는 그곳에서 열심히 공부하면 할수록 '아, 난 여기랑 안 맞는구나.'라는 크나큰 깨달음을 얻으며 졸업했다. 다시는 이 쪽과는 인연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아예 다른 분야로 대학원으로 진학했던 것도 그 깨달음의 결과였다.


그러나 1점짜리였던 나의 선택은 꽤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항공우주공학과는 만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회사에 들어가서 담당한 분야가 항공분야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항공분야를 담당하며 일하다 보니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타칭 해당 분야 전문가라는 타이틀 비슷 한 것이 붙었다. 그리고 그렇게 회사에서 최대한 욕은 안 먹게 노력하며 1인분의 몫을 하려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원하던 해외 생활도 하고 있다.


처음부터 100점짜리 선택일 수도 있지만, 내가 한 선택들은 대다수 10점 미만짜리 선택이었다. 그래서 주변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한 자릿수대의 선택들이 알고 보면 고득점, 어쩔 땐 만점짜리 결과를 가져다주는 잠재력이 있었던 거라면?


선택의 점수는 결과가 말해준다. 당시 선택의 점수는 아주 낮을 수 있다. 그러나 언제든 점수는 바뀔 수 있다. 한 번 정해지면 고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1점짜리 선택이라고 무시하지 말자. 그 선택의 점수는 결과로 다시 매겨질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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