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된 후, 방학을 이용해서 유럽여행을 가는 주변 친구들이 많았다. 여행을 위해 열심히 아르바이트하여 쌈짓돈을 모으고 넉넉하지 않은 예산에도 주눅 들지 않았다. 최대한 돈을 아껴 하나라도 더 많은 경험을 하기 위해 꼼꼼하게 계획을 짜는 걸 보고 있자니, 부러우면서도 그렇게까지 할 자신이 없어서 난 못하겠구나 싶었다.
그때 유럽 여행을 준비하던 친구들 중에 벨기에를 가는 친구들이 있었다. 무엇을 위해 벨기에를 가냐고 물었다. 그들은 말했다.
"와플. 벨기에 하면 와플이지. 와플 먹으러 벨기에 갈 거야"
그렇다. 그들은 순수하게 벨기에 와플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정에 브뤼셀을 넣었다. 미슐랭 3 스타와 같은 이치였을지도 모르겠다. 벨기에 와플을 먹으러 벨기에를 간다라. 그때였을까? 어렴풋이 나도 언젠가는 벨기에 가서 오리지널 벨기에 와플을 먹어보리라 마음먹은 것이.
이번에 기회가 되어 브뤼셀에 다녀오게 되었다. 가기 전부터 와플 먹을 생각에 너무 신났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와플집으로 향한 발걸음. 결과는?
내 입맛이 달라진 걸까? 아니면 너무 단 맛을 즐기지 않는 편이라 그런가. 특별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나의 벨기에에 대한 실망이 살짝 생기려 할 때쯤, 의외의 곳에서 벨기에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초콜릿!
벨기에 초콜릿도 유명하다는 걸 알 수 있는 것이 중심가에 한 집 걸러 계속 초콜릿 가게들이 즐비하다. 건강을 위해 초콜릿을 거부하려 했으나, 이 정도로 초콜릿에 진심이라면 뭔가 다른 게 있나 싶어 맘에 드는 곳에 들러 초콜릿을 샀다. 평생 가나 초콜릿, 크런키만 먹다가 비싼 초콜릿이라 하면 누가 준 페레로로쉐 먹으며 감동했던 나.
너무 많은 선택지에 일단 당황했지만, 가장 덜 달 것 같은 것들로 선택했다. 넷째 손가락 크기만 한 초콜릿 4개를 거의 만원이 되는 돈에 사다니. 단 돈 몇 센트라도 아끼려고 매주 마트 할인 상품만 기웃거리던 내가 그런 거금을 쓰게 될 줄이야. 여행이 무서운 이유가 이런 거겠지. 화폐가치를 상실하고 폭주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으며 초콜릿 하나를 꺼내 입 안에 넣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슬며시 얼굴에 퍼지는 미소가 느껴졌다.
'우와. 이런 맛이 있어!?
고오오오오오오오급 초콜릿이란 이런 맛이구나. 세상에. 이런 맛을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니...'
그랬다. 살면서 내가 먹었던 온갖 첨가물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초콜릿과는 비교가 안 되는 진하면서 묵직하면서도 깔끔한 맛이었다. 이걸 모르고 갈 뻔했다니...
분명 이것은 내게 분수에 맞지 않는 사치였다. 캐리어 수화물 추가 비용이 아까워 배낭에 꾸역꾸역 모든 짐을 들고 가는 내가 배가 차지도 않고 영양가가 있는 것도 아닌 초콜릿에 거금을 썼으니 말이다.
사실 가게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이래도 되나 싶었는데, 이번이 아니면 못 할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매우 신중하게 하나하나 초콜릿을 고른 후, 천천히 음미하며 남김없이 한 조각을 혀 끝으로 온전히 느끼는 일련의 과정을 경험하고 나니 사치한 거지만, 잘했구나 싶었다. 좋은 걸 경험해보지 않으면 무엇이 좋은 것인지를 모른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은 순간이었다.
비록 브뤼셀에 가면 다들 꼭 먹는다는 감자튀김을 포기했지만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초콜릿 하나로 내 입맛이 업그레이드되는 걸 느꼈을 뿐만 아니라, 경험을 위한 사치는 때로는 필요하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고작 초콜릿 하나로 너무 과장하는 거 아닌가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큰 울림이 있었기에 자신 있게 과장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모르는 무궁무진한 세상이 궁금하다. 평소 분수에 맞게 살면서 가끔은 눈꺼풀을 한 겹 떼어내는 멋진 경험을 하고 싶다.
드물지만, 그런 사치가 있다면 좀 더 삶이 재밌지 않을까? 그러려면 열심히 돈을 벌고 차곡차곡 모아야겠다. 허투루 돈을 쓰면 할 수 없을 테니.
이렇게 노동에 대한 동기부여가 생기는 것도 사치의 긍정적인 부분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