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 일찌감치 친한 동생과 약속했다. 12월 어느 날, 유럽 한 공항에서 꼭 만나자고.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10시간 넘는 시간을 비행기에서 제대로 다리도 펴지 못하고 왔을 텐데, 피곤한 기색 없이 반가운 얼굴로 출국장에서 나오는 걸 보니, 우리가 드디어 만났다는 게 실감이 났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성공한 삶인 듯한 착각도 살짝 들었다.
한국의 현대적인 건물들 사이에서 만나던 때와 달리, 우리 둘은 이국적인 분위기에 휩싸여서 그저 신났다. 하루 종일 걷다가 배고프면 끼니를 때우고 카페인 섭취도 하며 지친 다리를 달래고 숙소로 돌아와 씻고 자기 전까지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열흘을 함께 했다.
사실, 그녀와는 (지금은 둘 다 퇴사한) 회사 입사 동기라 함께 연수를 받았다. 하지만 당시에 같은 숙소를 공유한 사이는 아니었기에 생활습관이나 방식 같은 건 전혀 몰랐다. 그래서 혹여 불편해하면 어쩌나 걱정했다.
우리 둘 모두 뭐든 다 괜찮아봇이어서 더 걱정한 것도 있다. 배려로 시작하더라도 작은 것이 하나씩 쌓여 나중에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정말 우리는 진짜 괜찮았다.
오랜 시간을 함께 했어서 일까. 오히려 거절이나 반대를 해야 할 때는 단호하게 웃으며 잘 해결해 갔다. 그리고 헤어질 시간이 되었을 때도 웃으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기분 좋게 헤어졌다. 오히려 서로 놀리면서 헤어졌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한국 가서 먹을 겨울 간식으로 나를 놀렸고 나는 돌아가자마자 일해야 하는 그녀를 놀렸다. (글로 쓰고 보니 내가 더 나빴던 것 같다. 미안해.)
우리가 약속했던 12월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즐겁고 아름다웠다. 이런 연말이라면 언제든 대환영이다.
언젠가 또다시 약속의 12월을 함께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