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디자인과 좋지 않은 디자인
회사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발행되는 정기간행물 디자인을 맡은 적이 있다. 디자인을 처음부터 온전히 진행하는 것은 아니었고, 기존에 다른 디자이너가 잡아놓은 기준 쪽에 맞게 새 원고를 흘리기만 하는 작업이었다. 평소에 관심 있게 보던 간행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안의 구조라던지, 흐름 같은 것을 유심히 보질 않았다. 하지만 정작 작업을 위한 데이터를 받아보고 혼란스러웠다. 그 작업물은 그동안 내가 생각하고 경험한 편집디자인과 많이 달랐다. 작업의 위계와 요소 간 관계들이 복잡하게 엉켜있었고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장식들이 과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것들을 티 안 나게 조금만 바꿀까? 내 기준에 맞는 규칙을 조금이라도 만들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전 사람에게 넘겨받은 파일에 그대로 원고만 흘리고 말았다. 분명 내겐 읽기 불편하고, 논리와 규칙이 보이지 않는 디자인이었지만 초기 작업자와 기획자 사이에 어떤 대화들이 오갔고, 어떤 콘셉트와 생각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내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의도와 방향성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좋은 디자인이다 나쁜 디자인이다라는 것을 판단할 근거가 내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작업을 마무리하고, 마찬가지로 나는 다음 담당 디자이너에게 디자인 파일을 넘겼다.
모든 디자인은 콘셉트, 즉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개인의 디자인 성향과 취향, 기준으로 좋다 나쁘다 단정 짓기 어렵다는 것이다. 때로는 아름답지 않은 것이, 사용하기 불편한 것이 정답일 때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