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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KE May 20. 2019

눈의 감각 vs 수치로 디자인 하기

디자이너의 시각 보정에 관하여

Gtable 로고 디자인 작업 시, 가운데 정렬을 위한 시각 보정

기술적인 노하우나 지식을 나누기 보다 경험을 바탕으로 주관적인 생각을 공유하기 위한 글 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날개집’이라는 곳에서 일했다. 운이 좋게도 나는 날개집에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디자인을 접하고 그나마 작업 다운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날개집은 안상수 선생님의 디자인 연구소다. 선생님 호가 ‘날개’라 날개의 집이라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다. 상수동 홍대 후문에 위치한 연구실은 말 그대로 진짜 '집' 형태였다. 지금은 선생님이 큰 스승으로 있는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의 교장실을 부르는 이름이라고 한다.


당시에 같은 또래 젊은 디자이너 5-6명 정도가 선생님과 생활하며 디자인을 배웠다. 딱히 위, 아래가 없었던 구조라 서로 자연스럽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토론하는 분위기였다. 경험이 많지 않았던 우리들 사이에서 ‘수치로 작업하는 것 vs 눈의 감각을 믿고 작업하는 것’으로 논쟁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 우리는 여권 디자인을 개선하는 프로젝트와 중학교 교과서 마스터(기준 쪽)를 잡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디자인을 하면 이후 다른 디자이너가 받아서 다음 작업을 하고 다음 디자이너가 받아서 다음 작업을 하는 프로세스였다.


협업 경험이 없었고, 툴도 능숙하지 않았고, 어설픈 감각과 열정만 있었을 때라 나는 모든 텍스트를 쪼개고 하나하나 눈으로 글줄, 글자 사이, 단락을 맞췄다. 글자가 생긴 모양이 다 다르고, 그 모두 다른 모양을 가진 글자들의 조합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인 글줄 사이가 적용되거나 같은 수치의 글자 사이를 적용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가진 정보의 무게가 다르기 때문에 일정한 위치 값이나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여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파일을 받아본 다음 디자이너는 많이 놀라고 어이가 없었을 것 같다. 아마 데이터 정리가 하나도 안되었다고 생각했을 것 같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나... 싶기도 했을 것 같다. 몇 번의 논쟁 이후 나는 인디자인 프로그램에서 단락/문자 등 스타일을 설정하거나 수치로 기준을 잡아 디자인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이후 ‘601비상’이라는 그래픽 스튜디오에서 박금준 선생님의 어머니 고희연 축사 디자인을 하는데 몇 번을 다시 작업해도 통과가 되지 않았다. 다른 디자인 요소 없이 에이포 크기 종이에 한 덩어리 텍스트와 약간의 이미지가 전부인 디자인이었다. 예전 작업했던 방식처럼 텍스트를 쪼개 하나하나 일일이 눈으로 맞추고 또 맞추고 또 맞추어 내가 더 손을 볼 곳이 없겠구나 라는 판단이 섰을 때 그제야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회사에서 하는 작업도 대상이 좁다면, 다른 사람과 같이 협업하는 작업이 아니라면, 단발성인 작업이라면 이런 방식으로도 디자인을 할 수도 있구나 라고 배웠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았고 당연하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이 오히려 당연하기도 했다.


최근 SNS에 자주 올라오는 눈으로 맞춰 시각 보정하는 것과 수치로 작업 하는 것에 관한 글들을 읽었다. 새로 리뉴얼된 기업들의 서비스 로고를 두고 시각보정이 잘못되었다, 괜찮다 등의 논쟁도 끊이지 않는다.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한 번씩 고민을 해본 문제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지금의 생각을 적어보자면... 지극히 내가 일을 하는 분야에서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수치로 작업을 하는 것과 눈으로 맞춰 시각 보정을 하는 것 둘 다 맞다. 하지만 어느 것이 더 적합한가에 관한 부분은 프로젝트에 따라 다르다. 정렬이 맞았는지, 커닝이 맞는지, 시각보정이 된 것인지 아닌지는 사실 주관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맞다 틀리다 식의 정답이 없다. 더 집요한 사람, 더 디테일한 눈과 감각을 가진 사람이 조금 더 정답에 가까울 뿐이다.

Smile배송 로고 디자인 중간 과정


타겟이 한정적인 프로젝트나 단발성인 프로젝트는 하나하나 눈으로 시각 보정을 해가며 작업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반대로 넓은 타겟의 대중을 대상으로한 디자인, 템플릿 작업, 혹은 시스템에 등록되는 일 등 여러 조직이 함께 움직이는 작업에선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 아이덴티티, 로고 작업은 당연히 수치 작업 후 눈으로 맞추는 시각 보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 역시 시각적으로 잘 정렬이 되어있다, 그렇지 않다를 객관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지금은 디자이너와 디자이너가 아닌 직군으로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이분법 적으로 나누는 시대가 아니다. 나 또한 디자이너지만 디자이너의 날카로운 눈과 감각을 클라이언트가 믿고 믿지 않는 것이 꼭 그렇게 대단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프로젝트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이지 직군 문제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오히려 디자이너들이 수치나 간격 등이 맞았다 틀렸다의 시각적인 문제를 넘어 다양하게 변하는 환경 속에서 각자가 타고난, 혹은 오랜 시간 훈련한 감각을 어떻게 활용 할지 함께 고민할 수 있다면 더 좋지않을까?  


어디가 정답이고, 무엇이 기준일까? 정답은 자기 자신이다. 내가 온 힘을 다해 타겟, 방향성, 사용성 등을 고민해 후회 없을만한 노력을 했다면 그걸로 된 것 아닐까? 나머지는 사용자가 판단할 몫이다. 냉소적인 의미로 들릴 수 있지만, 지금의 나는 수치도 믿지 않고 내 눈의 감각도 믿지 않는다. 나의 태도를 믿고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그냥 할 뿐이다.




instagram.com/kiwa_archive

behance.net/kiwa_work

에도 아주 간간히 작업물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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