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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woong choi Nov 04. 2019

내 낯선 발렌시아가

낯선컨퍼런스 솔직 후기

내 신발은 늘 반스(vans)다. 누군가 내게 최고의 브랜드를 물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브랜드가 반스다. 반스는 가볍고 편하고 늘 한결같은 브랜드다. 사내 임직원 쿠폰을 붙이면 G마켓에서 35000원 정도에 반스 어센틱을 살 수 있다. 내 평소 스타일과도 맞아서 나는 늘 한결같이 반스를 신었다. 그 적당함과 익숙함이, 그 정도가 딱 좋았다.  


어느 날 자주 가지도 않는 백화점 한 매장에서 발렌시아가 트랙을 만났다. 만난 순간 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한 끌림을 받았다. 나는 신고 걷고 뛰는 기능을 하는 신발이라기보다 일종의 예술 작품 같은 느낌으로 트랙을 구매했다. 100만원에 가까운 금액의 운동화를 산다는 것이 매우 부담스러웠지만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고 특별한 날에만 꺼내어 아껴 신었다.


낯선컨퍼런스라는 낯설고 특이한 컨퍼런스에 초대받았다. 주변에 이미 초대를 받은, 초대를 받아 다녀온 지인들이 있어 알고 있던 컨퍼런스였다. 낯선컨퍼런스는 하나의 큰 주제를 정해 그것을 잘하고 있는, 앞으로 잘할 것 같은 사람들이 모여 각자 자신들의 생각과 의견을 나누며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일종의 커뮤니티 형식의 컨퍼런스다.


나는 사교적이거나 개방적인 성격이 아니라, 낯선 사람 40명과 2박 3일을 제주에서 보내야 하는 일정이 극히! 부담스러웠다. 평소에 관심 있게 지켜보던 브랜드와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들, 관련 분야에서 이미 능력과 인사이트를 인정받은 사람들이 초대가 되어 무척 궁금하긴 했지만 괜히 좋은 취지의 컨퍼런스를 내가 어색하게 혹은 불편하게 만들면서 컨퍼런스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데 두려움이 있다. 누구나 그런 두려움을 조금씩 가지고 있지만, 나는 특히 더 크다. 낯선 경험,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은 너무 좋지만, 사람에게는 익숙함이 편했다.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 에너지가 흐르고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두렵다. 내가 그 사람의 인격이나 삶, 가치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면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뭔가 일이나 행동도 지구와 인류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나는 이 벽을 깨고 싶었다. 익숙한 사람들이 아닌, 처음 나를 만난 낯선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최근 크게 아프고 난 후, 언제 일을 그만둘지도 모르고 바로 내일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데 너무 좁게만 생각하고 한쪽으로만 생각하면서 사는 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참여를 결심했다.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에 늘 신던 반스가 아닌 가장 비싼 신발을 신었다.




첫날 컨퍼런스에서 만난 사람들은 에너지와 텐션이 대단했다. 예고 없이 한 번에 20000km로 훅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그 경험이 너무 생소해서 얼른 집에 가고 싶었다. 이미 나를 제외한 모두가 친해있는 느낌이었고 이 사람들은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서로 자기소개를 마치고 간단하게 단체로 할 수 있는 게임을 했다. 첫 게임은 40명이 단체로 하는 가위바위보였다. 1등에게 큰 상품이 걸려있었다. 나는 주목받고 싶지 않아 서둘러 지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가위만 냈다. 딱 두 번 만에 내가 모두를 이겼다.


두 번째 게임은 신발날리기였다. 솔직히 나는 너무 하기 싫었다. '아... 최악이다. 애지중지하는 내 발렌시아가를 콘크리트 바닥에 날려버려야 하다니!' 하지만 반대로 나를 깰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기도 했다. 내가 스스로 만들고 있는 프레임을 깨고 싶어서 큰 마음먹고 참여한 컨퍼런스이니 나를 막고 있는 것들을 조금이라도 부수고 싶어 졌다.


"에잇!"


신발을 멀리 날려버렸고, 내 발렌시아가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두 차례나 크게 뒹굴었다. 저녁엔 뒤풀이 여파로 김치 국물에 뒤범벅이 되었다. 뭔가 후련함을 기대했지만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둘째 날이 되었다. 늦은 뒤풀이 후 잠깐 잠이 들었는데 심한 악몽을 꿨다.


"아... 집에 가고 싶다 레알... 진심"

'그래 뭐 다시 안 봐도 그만인 사람들인데 그냥 나대로 집중하자...'라는 생각을 했다. 일종의 자포자기 같은 것이었다. 억지로 뭔가를 하려고 꾸며내려고 하지 않으니 내 마음이 조금씩 편해졌다. 약간이지만 조금씩 사람들이 말을 걸어주기 시작했다. 나도 겉모습과 만들어진 프레임, 고정관념 같은 것을 보지 않고 사람 자체를 보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더러워진 신발은 조금씩 신경 쓰이지 않았다.

"신발이야 그냥 신발이지 뭐..."


그제서야 조금씩 사람들도 내가 가진 모습 자체에 집중을 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자신의 프레임, 벽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씌우는 것 같다. 모두가 잘 알겠지만 그 벽을 깨는 것은 진짜 어렵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신발을 날려버리면서 벽에 조금의 흠집 정도는 만든 것 같은 느낌이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2박 3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얼마나 달라졌고 얼마나 많은 것을 얻었는지 판단하긴 어렵지만, 일단 한보 전진이다. 그 기분이 마냥 나쁘고 불편하지만은 않다.


익숙하지 않은 낯선 신발은 있어도 나쁜 신발은 없으니까.





아래는 낯선컨퍼런스 4기 사진. 모든 사진은 이형기님(http://selftrip.co.kr/)이 촬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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