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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KE Jun 23. 2020

디자이너가 발란스를 유지한다는 것

생존기 | 스튜디오 창업 두 달째

회사를 독립하고 플랜트 샵을 차리기로 마음먹었다. 뜬금없이 '웬 플랜트!?...'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10년 넘게 고민하고 계획했던 프로젝트라 더 늦기 전에 시작이라도 해보고 싶었다.(구체적인 콘셉트와 비전은 여유가 되는대로 정리해서 공유를 하려 한다.)


퇴사 전 몇몇 지인들에게 간략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의 계획을 이야기했더니, 감사하게도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해주겠다는 분들이 몇 분 계셨다. 너무 좋은 조건이었고 고마운 마음이었지만 신세를 지는 것이 싫어 퇴사를 하자마자 덜컥 이태원에 작은 쇼륨을 계약했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디자인/브랜딩 관련 프로젝트 의뢰가 많이 들어와 계획했던 플랜트 샵 브랜딩과 쇼룸 공간에 관한 준비가 계속 미뤄졌다. 마침 코로나 영향으로 이태원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없어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준비하기로 했다.


이리저리 프로젝트에 치이며 공간을 두 달 넘게 비워두었고 이러다간 아무것도 안 되겠다는 생각에 빈 쇼룸에 식물을 하나둘씩 채우기 시작했다. 꽤 가격이 나가는 식물들이라 이 식물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어떻게 적응을 하는지 살펴보고 부족한 것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준비를 하는 기간이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고 공간을 더 멋지게 꾸미고 싶은 욕심에 아버지가 애지중지하시는 분재를 가져다 놓고 싶었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걱정을 하시며 반대하셨지만, 지금 철쭉이 딱 예쁘게 피었으니 1주일만 가져다 놓고 꽃이 떨어지면 다시 가지고 오라고 못이기는 척 내어주셨다. 그리곤 주의해야 할 것들을 아주 자세히 알려주셨다.


조심조심 철쭉을 옮기고 하루 동안 굉장히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었다. 다음 날부터는 외부 미팅이 많아 이틀 정도 쇼룸에 가지 못했다. 삼일째 되던 날, 쇼룸에 방문했더니 분재에 꽃이 모두 시들어있었다. 나는 아버지 말씀대로 ‘이제 꽃이 떨어지려나보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건조한 듯하며 물을 주고 환기가 잘 되도록 하루 동안 밖에 내어두었다. 그리고 또 쇼룸에 가지 못했다. 약속한 일주일이 되어 조심조심 철쭉을 옮겨 아버지께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이틀 후 철쭉은 죽었다. 이동 중 스트레스를 받은 건지, 환기가 잘되지 않았던 것인지, 수분이 부족했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내 욕심 때문에 이 귀한 생명을 보냈다고 결론지었다. 내가 분재를 다룰 수 있는 역량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준비 없이 덜컥 분재를 가져온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회사를 창업하고 두 달간 일이 몰려, 내가 소화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스케줄을 빠듯하게 쳐내고 있었다. 서둘러 자리를 잡아야겠다는 불안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내 욕심이 원인일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러다간 분재처럼 모든 것을 망쳐버릴 수도 있겠다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욕심이 나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디자이너가 실무를 잡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짧다는 이야기들이 많아 건강이나 주변을 챙기기보다 시간을 짜내어 하나라고 더 경험해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 과정에서 얻은 것들도 많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잃고 후회하는 것들이 더 많다.


내가 쓸 수 있는 시간, 체력 등의 자원은 제한되어있고 어느 한 곳에 무리하게 치우치게 되면  다른 곳은 결국 무너지게 되는 것 같다. 건강이나 생활, 주변 관계 같은 것들 말이다. 아마도 분재가 천천히, 차근차근, 균형을 유지하며 욕심을 내지 말고 준비하라는 주의를 준 것 같다.



instagram.com/ki_flake

에도 간간히 작업물을 올립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p-s-1

역시 많은 응원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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