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서점 #독립서점 #책처방 #인터뷰
2015년 21개, 2016년 31개, 누군가는 “독립서점의 열풍” 이라 말할 정도로 많은 특색있는 서점이 생겨나고 있다. 시집 서점 <위트앤시니컬>, 추리소설 책방 <미스터리유니온>, 페미니즘 북카페 <doing> 등 도전적이고 재미있는서점 가운데 한 책방을 소개하려 한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예약제 서점’ <사적인서점> 이다. 2016년 10월 문을 연 이 곳은 책방지기와의 1시간의 상담 후 책을 처방해주는 책처방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비슷한 컨셉의 서점으로 홋카이도 이와타 서점에서는 '일만엔 선서' 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의 경우 100개 가량의 질문을 손님에게 받고 10만원 가량의 책을 배송해준다. 많은 질문을 통해 그 사람의 취향을 분석하고, 그에 맞는 책을 추천해주는 것이 특징이다.
<사적인 서점> 은 독서차트 작성을 포함한 1시간의 상담을 통해 "그 시간"에 집중한다는 점이 장점이다. 더불어 1만엔 선서는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난다면, <사적인 서점>은 자신이 원하는 시간대에 신청할 수 있고, 꾸준히 소통하며 관계를 맺으며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위 서점의 특징이다.
나 역시도 작년 11월 처음 방문 후 3번의 책처방 프로그램을 처음 받은 후, 대표님과의 인연도 6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처음 방문한 날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영하에 가까운 날씨에 겨우겨우 도착한 서점. 그동안 방문한 서점과는 공간의 특성부터 달랐다. 약 10평 내외의 공간 안에, 일본에 다녀와서 작게 전시되어 있던 소소한 소품들, 추운 겨울 동그란 안경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며 건네주셨던 작은 차 한잔, 당일 전시를 통해 소개 된 큐레이션 된 책들까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의 터널을 지나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또 다른 느낌의 이색적인 공간이었다. 서로 오고 갔던 이야기, 그 후 추천 받는 책은 그 따뜻함을 계속해서 생각나게 하였다.
이러한 따뜻함이 어떻게 만들어졌을 지, 대표님의 모습 속에서 과연 서점을 시작한 10월, 6개월 후 지금, 개인적으로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 지 궁금했다. 책처방 프로그램으로서의 만남이 아닌 사적인 인터뷰를 통해 만나고 싶었고, 1시간 가량의 짧은 인터뷰에서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사적인 서점 정지혜 대표님은 자신을 “책과 사람의 만남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북디렉터" 라 자신을 소개하였다. 그러한 많은 일들 중에 하나로 사적인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29cm 와의 BLIND BOOK / 빈브라더스 ‘나를 만든 책들’ 전시 등 사적인 서점 일 외에도 외부 파트너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셨다. 이러한 프로젝트 속에서 개별개별의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 지, 최근에 인상 깊었던 프로젝트가 어떤 것이 있었는 지 궁금하였다.
올해 3월 뮤지션 '이내' 님과 진행하였던 북콘서트였다고 한다. 뮤지션이면서 작가 <모든 시도는 따뜻할수 밖에> 라는 책을 쓰신 분으로 작은 공간들만 찾아서 활동하시는 분이라고 한다. 이웃 <이후북스> 라는 서점 대표님의 소개로 처음 읽게 된 후 이러한 좋은 책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콜라보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북스> 에서는 콘서트를, <사적인 서점> 에서는 북토크로 진행되었다.
"책과 사람의 만남을 만드는 일" 의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표님이기에 북토크의 운영방식도 타 행사와는 조금 다르다. 저자분이 말하는 시간은 적고 독자분들이 더 말을 많이 한다. 다른 독자 분들이 다른 독자의 질문에 피드백도 할 수 있고, 작가님은 이렇게 쓰셨다고 이야기 하면, 나는 이렇게 읽었다. 이야기하며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다. 대표님은 이번 행사를 진행하며, “자기가 쓴 편지에 답장을 해주어서 좋았다” 라는 이내 작가님의 말이 마음에 남았다고 한다. “앞으로도 이렇게 좋은 저자의 책을 독자에게 소개하며 우편배달부같은 역할을 계속하고 싶다” 라는 말은 아직까지도 남아있던 대표님의 여운을 느껴볼 수 있었다.
이야기를 하며, 개인적으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자리가 있고 그 안에 책이라는 매개체가 있다고 느낄 정도로, 대표님의 사람에 대한 관심이 묻어나왔다. 그러한 관심을 또 다시 느껴볼 수 있던 사례는 7개월 동안 사적인 서점을 운영하며 중요하게 생각했던 계기를 묻는 질문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20대 초반여자 손님 이었고, SNS를 통해 알게 되어 책 처방 프로그램을 신청하신 분이었다. 처방을 나누며 개인적인 고민이 있다는 것을 듣게 되었고, 그 시간동안 문제를 해결해드릴 수 없었지만 오롯이 그 이야기를 들으며 같이 고민한 시간이었다고 하였다. 그분이 돌아가신 후 처방했던 책은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라는 책이었다.
위 책을 쓰신 저자 분이 책을 쓰실 때는 25살이었다. 부산이 고향이었던 저자님은 힘든 학교 생활, 서울 살이의 현실이 싫어 정리하고 해외로 떠났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막상 외국에 가니 달라질 줄 알았는데, 다를 바 없는 생활을 겪으며, '나를 둘러싼 현실은 바뀌지 않으니 내가 바뀌어야 겠다' 하여 3년 동안 여행을 하며 쓴 책이라고 하였다. 이 책을 손님께 처방했던 이유는 그 분을 둘러싼 고민을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저자님 처럼 조금 더 자신에 대해서 들여다 보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책을 처방하셨다고 한다.
위 이야기를 들으며 참으로 따뜻하신 분이구나 다시금 느꼈다. 짧은 이야기에도 따뜻함이 느껴졌는데 그 손님 분은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까 라는 생각이 되었다. 그러기에 손님이 다시 보내주신 손편지에는 “이제 자신이 문제를 돌파해 보려 노력했고, 문제가 잘 해결이 되었다.” 적혀있었고, “ 책을 읽었기에 나를 온전히 마주하고 싶어서 산티아고 행 티켓을 끊었다” 라고, “구름 속에 있던 자기 마음을 깨끗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라고 그 날 그 시간에 사적인 서점에 가게 된 것을 감사한다고 전해주셨다고 하였다.
'내가 만나는 1시간이, 내가 권하는 1권의 책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씨앗은 될 수 있다고' 다시금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하며, 보람감과 책임감을 더더욱 느꼈다고 하였다.
누군가에게는 짧은 1시간 일 수 있지만, 그 1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는 대표님의 모습 속에서 "독립 서점의 열풍" 이 많은 분들의 노력 속에서 나온다는 것을 다시금 발견하게 되었다. 다른 독립서점들의 사례도 꾸준히 보며 자극을 받는 다는 대표님의 입에서는 <책방 연희> 라는 서점의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연희 상자] 라는 큐레이션 박스라는 특정 주제로 책 박스를 구독 형식으로 보내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셨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적인 서점이 그리고 있는 미래가 궁금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적인 서점의 미래는 어떨 것 같아요?” 라는 나의 질문에 “미래를 생각하고 있지 않다” 라는 역설적인 대답을 듣게 되었다. 책방을 열고 싶어 <땡스북스>를 퇴사하고 나온 대표님도 퇴사 후 실제 오픈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무리하지 않고 조금씩 해보자” 라는 마음을 먹은 후 이 정도면 해도 되겠다는 생각에 '퇴사 후 9개월' 만에 오픈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서점을 여는 과정을 거치면서 바뀐 것은 목표에 대한 생각이라 하였다. 목표를 보고 달려나가면 멀어보이는 목표에 그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지칠 수 있고 “이만큼이나 남았어” , “아무래도 못할 것 같아” 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하며, 목표를 생각하지 않고 내가 있는 자리에서 재밌고 즐거운 것을 해나가니 1년이나 2년이 지났을 때 자연스럽게 변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지금 역시도 불안감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1년뒤에 닫으면 닫을 수 있지”, “그동안 했던 경험을 가지고 주변에서 새로운 제안이 올 수도 있어” 라는 생각은 지금 이 자리에서 더 재미있는 것을 시도하게 되는 힘이라고 하였다. 아무리 계획하고 그렇게 움직이려 해도 변수가 많고, 뜻대로 되지도 않고 내가 계획한 대로 이루려고 해도 안 되는 경우가 많은 지금 이 때. 대표님은 그것을 불안해 하고 두려워 하지 않았다.
"오히려 7년 전에는 책방 주인을 할 지 몰랐는데 책방 주인이 되어있는 지금 모습을 보며, 1년, 2년뒤에 무엇이 될 지 기대하는 자신을 보고 싶고, 그것이 즐겁다" 고 하는 대표님의 말에서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며 서점에 대한 생각, 독자들을 만나며 느꼈던 생각,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들어 보았지만, 혹시 이러한 대표님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생각이 있을까 궁금했다.
그러면서 “소규모 서점의 큐레이션을 존중하는 문화” 에 대한 생각을 나누게 되었다. 작년 연말 <사적인 서점> 에서는 연말정산 이라는 기획전을 열었었다. 눈밝은 출판인 31명이 추천하는 <2016 올해의 책>을 소개하는 기획전이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는데, 독자 분들이 좋은책을 알게 되어 고맙다고 인사를 적어주시는 데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가 풍성해졌어요” 라는 댓글에 상처를 받으셨다고 한다.
이러한 기획전을 진행하는 이유는 <사적인 서점> 에서 책을 사달라는 것이 첫째고, 그러면서 좋은 책을 알면 좋겠다 라는 것이 부가적인 이유인데, 많은 독자 분들이 후자를 중심으로 생각하신다는 것이다. 31명을 고르는 일 부터, 31명에게 일일히 연락을 드려 원고를 받고 매일매일 편집해서 올리는 일도 모두 노동의 일부인데, 그 노동의 가치를 아직 많이 모르신다는 이야기였다. 독자들은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는 것이지만, 100의 에너지를 쏟았을 때 10,20의 결과물로 되돌아오는 현재의 상황에서 “이러한 활동을 내가 해야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고 한다.
최근 “독립서점의 열풍” 에 대해 분석하는 기사 중에서 주요한 이유 중에 하나로 도서정가제의 변화를 꼽기도 한다. 하지만, 최대 15%의 할인은 독자들로 하여금 선택지를 좁히게 만든다. 큐레이션을 열심히 해도 사진만 찍고 결과물을 메모하여 인터넷서점에서 구매하면 끝인, 그러한 선택을 비판할 수 없는 문화인 것이다. 그런 독자들에게 “소규모 서점의 큐레이션을 존중하는 문화” 를 같이 만들어 나가자고 이야기 하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바램이었다.
인구 당 서점 수를 비교하면 한국은 24,409명 당 1개, 독일은 13,063명(협회가입기준 25,279명)로 나타난다. 독서 인구의 감소, 출판 종수 / 부수의 정량적인 감소 등은 출판 시장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의 열풍이 단순히 열풍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소규모 서점의 큐레이션을 존중하는 문화” 와 같은 독자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끔 페이스북을 들어가면 <유시민의 글쓰기 전략목록 31> <제일기획 추천도서> 등 인플루언서에 의존하는 책 추천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색깔 중 파란색을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듯이 무엇을 어떻게 좋아하는 지는 많은 선택의 연속 속에서 취향은 만들어져 나간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어떻게 좋아하는가> 라는 질문에 "<사적인 서점> 의 과정을 독서의 취향을 발견하고 책 읽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라는 답안지가 많은 분들의 생각 속에 있었으면 하며 사적인 인터뷰를 마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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