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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고야 Mar 17. 2024

스페인 식민지배의 상징도시 인트라무로스 여행

여행을 참 좋아합니다

오늘은 필리핀에 살면서도 아직 시도해보지 못했던 마닐라 시티투어를 하기로 계획한 날이다. 마닐라 시티투어하면 보통 인트라무로스, 마닐라대성당, 리잘공원, 몰오브아시아, 마닐라베이, 오션파크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중에서 오늘은 스페인 문화가 남아있는 성벽 요새 인트라무로스(Intramuros)를 돌아보기로 하였다.


인트라무로스는 1571년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건축되어 300년 이상 필리핀에서 스페인 지배의 중심지였으며, 도시의 이름은 '성벽 안쪽'을 의미하는 라틴어 '인트라 무로스'(intra muros)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거대한 벽들로 둘러싸인 성벽 안에는 마닐라 성당, 산티아고 요새, 카나 마닐라 박물관, 산 어거스틴 성당, 산 어거스틴 박물관 등 스페인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건축물과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으며, 정부청사와 유럽식 거주지, 학교, 교회, 병원 등이 들어서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일본 점령군의 기지로 사용되었으며, 스페인 점령 시기인 16세기에 군사적 요충지였던 산티아고 요새(Fort Santiago)는 한때 필리핀 정치범들의 지하 감옥으로서 내부에는 고문실과 감옥 등이 들어서있어 오싹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번에는 자동차를 가져가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가는 노선을 직접 체험해 보기로 하였다. 그래야 나중에 집에 숙박하는 학생들이 마닐라투어를 원하면 자세히 설명을 해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침 8시에 나(Sam), 아내(Alda), 처형(Jane) 3명이서 로빈손 다스마리냐스 앞에서 만나 코스털몰(Coastal Mall)행 버스를 타고 마닐라로 향하였다.


버스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고 TV모니터도 6개나 달려있으며 버스 안에서 와이파이도 사용할 수 있는 등 훌륭한 설비를 갖추고 있었으나 젊은 운전기사가 얼마나 난폭하게 운전을 하는지 급정거에 급출발은 다반사요 거의 곡예를 하듯 차선을 넘나드는 통에 멀미가 날 정도였다. 이 나라는 버스정류장이 따로 없고 아무 데서나 손만 들면 정차하고 태워주기 때문에 급정거나 어느 정도 이해는 되지만 이 친구는 정말 너무한다 싶었다. 설상가상으로 교통체증으로 차가 막히니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진땀이 삐질삐질 나는 게 괜히 시도했나 하고 후회가 들 정도였다.


간신히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려서 코스털몰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이번엔 인트라무로스로 가는 차편을 알아보니 가장 좋은 방법이 택시를 타는 것이었다. 고가육교를 올라가 길 건너편으로 가서 택시를 잡아보기로 하였다. 버스터미널에도 정차해 있는 택시가 몇 개 보였으나 정차해 있는 택시는 손님을 골라 태우며 바가지요금을 청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고, 특히 1 공항에서는 밤늦은 시간에 택시횡포가 극심하며 택시강도가 빈번히 발생한다고 하는데 얼마 전에 아들 친구 일행이 당한 적이 있고 나도 싱가포르 갔다 오는 길에 당한 적이 있기에 마닐라에서 택시를 타면 항상 긴장이 된다.


그러나 만약 그런 일이 또 생기면 필리핀 생활 10여년의 내공을 보여주어 이제는 더 이상 당하지 않으리라는 굳은 마음으로 택시를 잡아탔다. 근데 가면서보니 미터기를 켜지 않기에 미리 알아둔 표현으로 "미터~ㄹ 따요"(Meter Tayo = Meter, please)라고 하니 교통정체가 심해서 미터기는 안 켜고 250페소를 달라고 한다. fixed price? 냐고 다시 물어보니 그렇단다. 실제로 곳곳에서 도로공사를 하고 요즘 마닐라 항구에 출입하는 컨테이너 트럭들 때문에 교통체증이 장난이 아니라 미터기를 켜면 그 이상 요금이 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운전기사 인상을 살펴보니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아저씨가 마음이 넉넉해 보여 일단 마음이 놓인다. 그래서 일단 가보자고 하였다. 그동안 많이 다녀본 길이라서 대략 20분 정도면 갈 수 있었는데 1시간이 넘게 걸려 간신히 인트라무로스에 도착하였다. 괜히 안쓰러워서 팁 50페소를 더하여 300페소를 주니 매우 고마워한다.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라는 마닐라 대성당 앞에 가니 마차를 타라고 호객행위를 한다. 먼저 성당 안을 둘러보고 나오니 멋진 카우보이 복장의 나이 지긋한 피노이(pinoy) 아저씨가 한국말을 섞어가며 이런저런 설명을 한다. 얼마 전에 마닐라투어를 왔던 한국 학생들이 이곳에서 마차를 100페소에 흥정을 하고 탔는데 돌아와서는 100달러라고 했다며 우기는 바람에 황당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기에 가격표를 보며 몇 번에 걸쳐 확인하고 또 확인하였다. 마차 1대에 3인 탑승 기준으로 30분 코스가 350페소, 1시간 코스가 700페소인데 인트라무로스 안에 있는 유명 관광포인트를 돌면서 설명을 곁들이는데 1시간 코스는 중간중간에 내려서 사진도 찍어주고 가이드를 해준다고 한다. 처음 온 곳이고 지도도 없기에 700페소짜리를 선택하였다.


큰 기대는 안 하고 탔는데 한국인 관광객을 얼마나 많이 상대를 했는지 한국말을 섞어가며 명소를 소개하는 멘트가 정말 재치가 넘친다. "여기 오래된 성당... 마닐라성당" "여기는 대학교.. 지금은 없어.. 일본 포탄.. 꽝" 여기 전에는 감옥.. 지금은 포장마차" "저기 사형장.. 필리핀 사람 많이 죽었어.. 일본 놈 나쁜 놈" "저기도 일본 포탄.. 일본 놈 나쁜 놈" 이 말을 들으니 갑자기 궁금해져서 물어보았다. 이 마차에 일본사람이 타도 똑같이 말을 하느냐? 그랬더니 자기는 지금과 똑같이 설명을 하는데 어떤 일본사람은 자기 말을 듣고는 잘못했다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여기저기 내려서 둘러보고 사진을 찍고 하다 보니 1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가이드해 준 젊은 친구가 아들이란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와 아들이 환상의 호흡을 맞추며 일을 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인다. 한국인의 몹쓸(?) 정이 또 도져서 마차값 700페소와 아들에게 100페소의 팁을 얹어주었다.


이곳 인트라무로스에는 설립된 지 380년 된 마닐라대학과 라이세움대학, 이스턴대학, 마푸아공대 등이 있어 수많은 학생들로 항상 활기가 넘친다. 학생들은 외국인을 보면 반갑게 인사하고 환한 미소로 응답한다. 선천적으로 개방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가 그렇게 만드는 것 같다. 시간이 12시 반 정도 되어 배가 고파지기에 점심을 무얼 먹을까 하다가 스페인 풍의 거리에 왔으니 스페인 식당에서 스페인 음식을 먹어보기로 하였다.


아까 마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본 스페인식 레스토랑을 찾아가는데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골목골목을 다녀봐도 찾질 못하고 지쳐갈 무렵 맛있는 음식냄새가 나는 건물이 있어 물어보니 레스토랑 맞단다. 들어가 보니 아름답고 정결하게 꾸며진 고급 레스토랑 분위기가 난다. 살짝 부담을 가지고 메뉴판을 훑어보니 그나마 적당한 가격에 Blue Marlin Steak가 보인다. 소고기 스테이크인지 알고 주문했는데 나중에 나온 걸 보니 생선살 스테이크와 파스타이다 ㅠ.ㅠ Mushroom Soup와 부코주스(Buco Juice)를 함께 주문하였다.

유럽 음식 특유의 올리브 오일향의 느끼함이 입안 가득 퍼지며 뱃속이 느글거린다. 후식으로 커피를 시켰는데 난생처음 앙증맞은 조그만 잔에 담긴 에스프레소를 마셔보았다. 첫 한 모금은 무척 쓰고 거부감이 느껴졌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쓴맛은 사라지고 약간의 구수함과 개운함이 느껴진다. 아~ 이 맛으로 그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마시는구나 ㅋㅋㅋ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바로 앞에 있는 토속 민예품점을 들어갔는데 밖에서 보기와 달리 그 규모와 상품 종류가 어마어마하다. 마치 박물관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 속에서 4층까지 구경하고 나니 어느덧 시간이 3시 반이 되었다. 아차~ 지금 산타 아고 요새(Fort Santiago)를 들어가면 집에 돌아갈 시간이 너무 늦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에 아쉬움을 남긴 채 다시 택시를 타고 코스털몰 버스터미널로 돌아온다.


다스마리냐스(Dasmarinas)행 버스에 몸을 실으니 피곤이 몰려온다. 이곳 필리핀에서 장거리 버스를 타면 중간중간 행상들이 올라타서 간단한 먹거리와 조잡스러운 물건을 팔곤 한다. 빵, 과자, 생수, 옥수수, 땅콩... 등등 우리도 1 봉지에 10 페소 하는 땅콩을 사서 맛을 보았는데 의외로 맛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올라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보다 보니 어느덧 Robinson Pala pala에 도착하였다.


아침에 주차장에 세워둔 우리 자가용에 타니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렇게 우리의 첫 마닐라투어는 끝이 났다.


고마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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