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긴겨울 Jul 07. 2016

잊고 싶지 않아,

그래서 남겨보는 나의 첫 발자국 

Jun.24/16


수년 동안 시민권 신청을 '게으름'의 이유로 미뤄왔는데, 곧 만료되는 영주권 앞두고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과거의 게으른 나 때문에 현재의 내가 벌을 받고 있다. 시민권 신청과 더불어 영주권 연장까지 보험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아까운 돈 $50+알파가 더 소비될 예정이다. 


목요일 새벽, 몸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상사와 부상사, 그리고 인사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낸 뒤 아침 10시까지 누워있기 더하기 선잠 자기를 행했다. 일어나서 의사를 보러 가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대청소를 하기엔 지난주 캠핑으로 인해 난장판이 된 이 공간을 혼자서 정리하다 다시 병이 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일단 밀린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고, 컴퓨터에 앉아서 이민국 사이트에 접속해서 신청서를 다운받았다. 그리고 작성하기 시작했다. 신청서를 기입하던 중, 나의 삶을 기록이 단절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주권 연장이든 시민권 신청이든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기록이 있는데, 그게 바로 나의 최근 5년 동안의 행적. 2011년까지는 facebook을 너무나 잘 사용해서 기록이나 사진들을 보고 추정할 수 있었지만, 그 이후 나의 행적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한국에 언제 다녀왔는지 날짜로 모르겠고, Seattle에 당일여행을 다녀온 날들이 언제였는지, 어떤 여행을 무슨 해에 다녀왔는지, 내가 Starbucks에서 언제 일을 시작했는지도 - 그게 2010년부터인지, 2011년부터인지 조차도 - 기억이 안 난다.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다.


싸이월드를 찾아내어 그곳 아이디와 비밀번호 찾아내느라 한 시간 소비, facebook의 모든 status를 읽어내느라 두 시간 넘게 소비, 그리고 알았다. 내 삶의 기록이 2013년 이후에 거의 없다는 것을.. (아예 없다는 것은 아니다. 뜨문뜨문 있어서 더 미치겠다.)


대한항공 웹사이트, expedia 사이트, 여러 여행사 사이트와 나의 이메일 계정을 긁어내서 간신히 맞춘 출입국 날짜들, 그리고 그동안의 이력서를 통해 알아낸 나의 학교와 일터 날짜들. 이것들로 간신이 신청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오늘, 오랜만에 접속한 facebook을 통해 나의 오래전 일상 사진을 살펴봤다. 웃다가, 그 당시의 생각에 젖었다가, 눈물 좀 흘리다가, 또 미소 짓다가... 그렇게 좋은 시간을 보냈다. 5년 전에 매일 얼굴을 보던 사이가 지금은 한 달에 한번 보기도 힘든 또는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사이가 되어버린 경우가 있었고, 그때 안부만 묻던 사이가 지금은 이삼일에 한 번씩 안부를 묻는 관계가 되기도 했고, 그 당시 친했는데 지금은 껄끄러워진 경우도 있으니... 사진을 보는 내내 기분이 참 이상했다.


소중한 순간순간의 기억들을 잊고 지냈다. 뭐가 그리 바쁘고 급하다고 흔적도 안 남긴 삶을 살았을까. SNS 또는 사이트에 올리는 공유의 기록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내 기억력의 한계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왜 짧은 한 줄이라도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랄까.


내년, 후년, 십 년 뒤에 이런 마음이 또 들지 않도록 이곳에 발자국을 남겨본다. 꾸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