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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겨울 Aug 12. 2016

얼떨결에 커밍아웃

그 몇 초간의 어색한 순간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친구 S는 레즈비언이다. 

몇 년 전, 그녀가 밴쿠버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만나게 된 인연의 끈을 이어 지금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처음 그녀가 나에게 커밍아웃한 이야기는 다음에 풀기로 하고, 오늘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


S에게는 4개월 된 너무나 사랑스러운 딸이 있다. 그녀가 출산한 게 아니라, 그녀의 부인과 함께 정자은행을 통해 구입한 정자로 그녀의 부인의 몸에 시술해서 출산했다. 정말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 딸 사진을 보며 나와 둘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옆으로 지나가던 미셀이 사진을 보고 "어머, 예쁘다! 니딸이야?" 물었고, S는 기쁘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몇 개월이나 되었냐고 묻는 미셀에게, 4개월 되었다고 답을 했다. 그때 미셀이 S의 몸을 위아래도 훑더니 "No way" 한다. 4개월 전 출산한 몸이 아닌, 늘씬한 S의 몸을 보며 그럴 리 없다고 덧붙인다.


S는 "아, 내가 낳은 애가 아니야"라고 말했다. 미셀은 "그럼 입양한 거야?"라고 물었고, S는 "아니, 내 부인이 임신과 출산을 했어."라고 했다. 그래도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을 보이는 미셸에게 S는, "나 레즈비언야."라고 얼떨결에 커밍아웃을 하고 말았다.


그 몇 초간의 어색함이 감돌고, 화제를 전환하고, 미셀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뒤 미셀이 내 자리로 와서 소곤소곤 얘기한다. 본인의 반응이 혹시 S를 상처 준 게 아닐까 하고 나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사과를 하고 싶단다. 생각도 못했던 일이라 자기 표정이 안 좋았을 수도 있었을 거라며 걱정한다. 그녀에게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점심시간에 S랑 같이 점심밥을 먹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말했다. "미셀이 혹시 자기의 행동에 네가 상처받았다면 사과하고 싶대, 그런데 내가 괜찮을 거라고 했어."

S는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회사 사람 전체에게 나에 대한 이메일을 한번 보내야겠어."라고 유머를 더한다. 함께 모든 사람들의 반응을 상상하며 깔깔대며 웃었다.


작년 S가 결혼할 때, 소냐가 물었다. "그 남자 뭐하는 사람이야?"

S는 "그 여자야"라고 정정하고, 그 여자는 이런 이런 일을 하고 있어.라고 답했을 때 숨길 수 없이 당황했던 소냐의 얼굴이 생각난다는 이야기도 나누며 우리 둘이 나름 즐겁게 점심식사를 즐겼다.


S는 커밍아웃을 할 때마다 사람들이 당황해하며 '아,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하지' 하는 표정을 보인다고 한다. 본인은 그런 일 많이 겪는다며. 겪을 때마다 진짜 당황스러운 순간이라고 말한다. 나도 받아쳤다. "야, 그 사람들도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스러워~"


어쨌든 나보다 한 가지 더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S, 그래도 지금처럼 씩씩하게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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