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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안드레아 Jul 06. 2022

매일 밤 침대 위에서 만나는 거대한 산

잠. 해가 진 뒤 전등을 모두 끄고 주변을 어둡고 조용하게 만든 뒤 가지런히 누워 눈을 감고 기다리면 어느새 아침이 되어있는 행위. 이 행위를 마치고 나면 몸은 가볍고 상쾌해지며 어제 소모한 체력을 다시 회복한다. 잠을 자는 동안에는 대부분의 신체 활동이 정지되고 회복하며 뇌 또한 휴식을 취한다. 따라서 잠을 잔다는 것은 하루 동안 사용한 에너지를 다시 채우는 과정이므로 인간이 수면에 대해 행복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의 가장 큰 욕구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두가 행복하게 잠에 들지는 못한다. 질병이 없고 의지와 능력만 된다면 언제든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는 다른 욕구들과는 다르게 상황이 되어도 마음대로 잘 안된다. 그럴 때면 정말 진절머리가 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잠귀가 밝다는 소리를 자주 들어왔다. 잘 때 조금의 빛이나 소리가 있으면 너무도 신경이 쓰여 잠에 들 수 없었다. 물리적인 환경 자체는 편안하더라도 머릿속에 흥미로운 주제나 걱정이 든다면 끝없이 그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어 또한 잠에 들 수 없었다. 그러다 수년 전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만은 없겠다고 결심한 뒤, 편안하게 잠에 들기 위해 수많은 방법을 모색하고 실행해 왔다. 수면에 관한 영상을 찾아보고 책도 읽어보았다. 자기 전 심부 체온을 낮춰야 잠이 잘 온다는 말을 듣고, 수면 한 시간 반 전에 샤워를 한다던가. 운동은 무조건 수면 3시간 전에 끝내고, 음식도 늦은 시간 일절 먹지 않고, 자기 한 시간 전부터 어려운 책을 읽으며 잠이 오길 바란 적도 있다. (마지막은 효과가 좋았다.)  실제로 이러한 노력은 꽤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일 년 365일 언제나 편안하게 잠에 들게 해 주지는 못했다. 지금조차 몇 주간 잘 자다가도 어느샌가 갑자기 잠에 들기가 어려운 시기가 주기적으로 다가온다. 행복하게 잠자리에 들기가 이렇게나 어려운 것인가.


어쩌면 수면 에너지를 몸에 저장할 수 없기 때문일까. 식욕은 몸에 잉여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다. 성욕 또한 즉시 해소하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길 정도는 아니다. 배설욕은 몸에 축적할 수는 없지만 해결하는데 길어야 수 분이면 되므로 보통 해결하기에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수면욕이란, 아무리 많이 잔다 해도 그로 인해 획득한 에너지는 하루를 넘기기 힘들다.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났다 하더라도 밤이 되면 다시 잠에 들고 싶어진다. 만일 피곤해도 두뇌가 평소와 사용할 수 있다면 바쁜 평일에는 잠을 줄이고 주말에 몰아 자서 일률을 높이고 걱정을 덜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만화처럼 수면 에너지를 따로 저장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현대인의 수면 수준은 비약적으로 상승할지도 모르겠다.


혹은 현대 사회가 잘못된 수면 주기를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성욕이나 식욕은 사람마다 모두 다른 주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수면 주기만은 개인에게 온전히 맞출 수 없는 사정이다. 9시까지 출근해야 한다면, 잠에 드는 시각은 마음대로 정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다음 날 아침 7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은 바꿀 수 없다. 만일 하루 8시간을 자야 나머지 16시간을 좋은 컨디션으로 지낼 수 있다면 7시에 일어나기 위해 밤 11시에 잠에 들어야 한다. 그러나 만일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해 12시에 잠들게 된다면, 그날은 7시간밖에 잘 수 없기 때문에 다음 하루를 피곤하게 보내게 된다. 어쩌면 낮잠을 잘 수도 있고, 커피로 각성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런 방법으로 부족한 수면 한 시간을 정확하게 보완했다면 참 다행이다. 그러나 낮잠 한 시간 = 밤잠 한 시간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방법 또한 정량적인 방법으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체력을 더 혹은 덜 쓰게 되면, 11시가 되기 전에 너무 피곤하거나 아직 눈이 초롱초롱하게 된다. 만약 너무 피곤하다면, 그나마 낫다. 저녁부터 도저히 잠에 들 수 없는 활동을 하다가 때에 맞춰 잠자리에 들면 다음 날부터는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11시가 되었는데도 잠이 오지 않는다면 여기서부터 굉장히 힘든 시간이 된다. 잠에 들 수 없는데도 지금 잠에 들어야 상쾌한 내일을 맞을 수 있으므로 11시부터 자려고 한다. 그러나 12시까지 잠에 들 수 없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생각만 하며 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당신은 대단하다. 그러나 만일 12시가 되기 전, 잠이 너무 안 와 시간을 확인하려 스마트폰을 켰다가 우연히 유튜브를 클릭하게 되고,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영상을 조금만 보다 잠을 청하려 했지만 어느새 3시간이 지나게 된다면. 상당히 절망적이다. 


사실 이는 모두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부작용일지 모른다. 과거에는 해가 진 뒤늦은 시간 친구를 만나고 싶어도 바로바로 여부를 물어볼 수 없었다. 밤에 시계를 확인하려면 불이 들어오는 아날로그시계를 바라봐야 했을 테고, 유튜브같이 잠시 한밤중 정신줄을 놓으면 수 시간을 잃어버리게 할 수단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스마트폰은 또 다른 방법으로도 우리의 수면을 방해할 수 있다. 어두운 환경에서만 발생하는 수면 호르몬도 밝은 화면이 충분히 둔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잔잔한 영상이 아닌, 게임이나 싸움 같이 뇌를 자극시키는 활동적인 영상을 본다면 그곳에 감정을 이입하게 되어 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심장박동은 빨라져 수면과의 거리는 더욱 멀어져 버릴 수도 있다.


사실 해결책은 알고 있다.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천지 차이이지 않은가. 하루 피곤하더라도 늦잠 자지 말고 목표한 시각에 일어나, 낮잠을 자거나 커피에 의지하지 않고 주기적으로 햇빛도 받아 가며 일과를 마친 뒤, 늦지 않은 시각에 땀이 나는 운동을 30분 정도 해주고, 식사도 몸에 부담되지 않을 건강한 음식으로 해결하고 시간이 늦어지면 집안의 조도를 조금씩 낮추어가며 전자기기 화면을 바라보지 않고 잔잔한 리듬을 유지하여 천천히 정해진 시각에 잠에 들면 편안하게 잘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심각하게 걱정할 만한 일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매일 같이 이런 삶을 살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하다.


나는 오늘도 거대한 산을 하나 넘을 것이다. 산의 정상은 짙은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그저 매일같이 보이지 않는 정상을 밟으려 끝없이 오를 뿐이다. 산을 오르다 보면, 내가 어디쯤 왔는지를 미처 알아채기도 전에 어느샌가 이미 또 다른 산의 기슭에 도착해 있다. 그전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올라야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일은 또 얼마나 오랜 시간 올라야 할지 모른다. 때로는 금방이기도 하고, 또 포기하고 싶을 만큼 오랜 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 언젠가는 도착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상에 오르지 못하게 될까 너무 두렵다. 또한 두려운 만큼 정상과 멀어진다. 그래도 산을 자주 오르다 보니 체력이 늘어난 것 같긴 하다. 쓸만한 장비도 몇 개 얻었다. 가파른 길을 오르는 기술도 많이 터득했다. 위기는 안도했을 때 찾아오긴 하지만. 아마 더 이상 산을 오르지 않아도 괜찮을 때가 되어서야 제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거침없이 돌파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힘내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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