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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안드레아 Jun 28. 2022

짓궂은 날씨, 오히려 좋아

지난 23일 기상청은 2022년 올해의 장마 구름이 처음으로 대한민국에 비를 뿌린다는 예보를 보냈다. 기온보다는 습도에게 공격받는 요즘이다. 사실 온도만 보면 그렇게 더운 날은 아니다. 높아도 30도를 넘지는 않으므로 여름의 진짜 모습을 아직은 다 보여주지 않은 듯하다만, 불쾌지수가 어째서 기온보다는 습도의 영향을 더 받는지 다시금 깨닫고 있다. 이 불쾌를 피하고자 카페나 도서관을 종종 찾기도 하지만 언제나 냉방기를 세차게 틀어주지도 않고 그것으로 불만할 수도 없으므로 완벽한 방법은 아니다.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집에서 에어컨이나 제습기를 켜고 지내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에어컨을 켜고 자기 전 종료 예약을 설정해놓으면 그렇게 상쾌한 하루가 또 없다. 비 내리는 밖이 보이는 창 앞에서 커피 한잔과 함께 글을 쓰며 쾌적함을 느끼다 잠시나마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가 습한 날씨를 온몸으로 느끼고 나면 그 효과를 최대로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언제나 이렇게 살 수는 없다. 가전제품을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 자유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발명한 방법이 하나 있다. 내가 부자였다면 깨닫지 못했을, 짓궂은 날씨를 즐기는 방법을 소개한다.     


바로 해당 기후를 주로 가지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상상을 하는 것이다. 여행과 모험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주 흥미로운 방법이다. 요즘처럼 비가 많이 와서 습한 나날들이 반복된다면 불쾌함을 느끼는 대신 열대우림에서 살아가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나는 위도가 낮아 기온이 높고 강수량이 높아 주변에 강이나 호수 등 물이 많고 언제나 습한 고온다습의 지역을 살아가고 있다. 주변엔 초목이 울창해 대한민국에선 찾아볼 수 없던 신기한 모습의 식물들도 많다. 강 위에서 보트를 타고 나아가 나무로 지은 수상가옥에 도달한다. 가옥은 물이 불어날 때를 대비하여 지면과의 거리를 조금 두고 있고, 창은 그 수가 많고 커다랗다. 원활한 통풍을 위해 설계되었다. 옆에는 낚싯대를 여러 개 드리우고 있는 옆집 아저씨가 내게 인사를 건넨다. 아주 즐겁지 않은가? 이런 지역에 살지 않더라도 며칠간 여행을 떠났다고 생각해보면 짓궂은 날씨가 더 이상 나를 불쾌하게만 만드는 악재라고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것이다. 조금 더 피부에 와닿게, 마치 현실로 착각했던 꿈처럼 열대우림으로 들어간다면 더 오랜 시간 즐길 수 있고 더 즐겁다. 그럴수록 현실과는 더 멀어질지 모르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또한 눈 내리는 겨울도 재밌는 기후 중 하나이다. 나는 며칠 전 대한민국에서 출발해 독일의 뮌헨을 경유하여 스위스 취리히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대한민국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극상의 추위를 맛보기 위해 가장 추운 겨울에 알프스산맥 중 하나를 정하여 오르기로 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곳으로 가려 남들과 다른 방향을 택하다 보니 길을 헤매게 되었는데, 현지인으로 보이는 한 중년의 아저씨가 길 잃은 외국인 여행자인 나를 집으로 잠시 초대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동행하기로 했다. 그곳은 집이라기보단 오두막이라고 부르기에 더 적절해 보였다. 내부는 내가 생각하던 스위스의 전통문화를 그대로 반영한 모습이었고, 장작과 함께 불타고 있는 벽난로 앞에는 흔들의자와 러그가 놓여있다. 아저씨는 벽난로 위에 걸려있는 주전자를 컵에 따르고는 의자에 앉은 내게 마셔보라며 김이 솔 올라오는 커피를 한잔 건넸다. 자신의 수십 년 노하우를 담아 만든 특제 커피라고 소개해 주었다. 실제 맛은 한국에서 매일같이 마시던 커피와 크게 다르지 않았겠지만,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혼자가 되는 것을 그렇게나 두려워하던 내가 멀리 지구 반대편의 나라까지 와서 이렇게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게 느껴진다...     


짧게 쓰려고 했지만, 상상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계획했던 것보다 조금 길게 써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불쾌한 시간을 즐겁고 빠르게 보내는 방법엔 이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상상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상상은 상상에 꼬리를 물기 때문에 한번 시작하면 장시간 불쾌함을 날려준다. 이렇게 길게 상상하는 것이 어렵다면 짧게 해도 무관하다. 그러나 마음을 다해야 한다.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핵심이므로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생각해야 한다. 발전한다면 짓궂은 날씨뿐만 아니라 고된 상황 어디에서나 사용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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