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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안드레아 Jun 30. 2022

아기가 태어나기 전 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성적 판단과 감정적 판단의 대립

며칠 전 SNS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는 게시글을 발견했다. 주제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 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이다. 정확한 상황은, 부모는 이미 세 살 된 첫째 딸이 있었고, 둘째를 임신 중에 병원에서 아이가 다운증후군이 있을 확률이 90% 이상이라는 사실을 통보받은 뒤였다. 아이의 아빠는 첫째도 있고, 매우 가슴 아픈 일이지만 우리 셋을 위해서라도 낳지 말자는 견해였다. 아이의 엄마는 그럴 수 없다, 몇 개월이지만 내 자식을 키워왔는데 어떻게 버릴 수가 있느냐는 견해였다. 


어느 한 입장을 지지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음을 밝힌다.      


만일 내게 묻는다면, 낳지 말자고 하겠다. 게시글의 남성과 같은 입장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반대되는 의견을 가지는 경우가 비교적 많은 듯하다. 실제로 내가 지인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도 그러한 답변을 들었다. 짧은 순간, 너무 감정에 치우친 결정이 아닌가 했지만 어느 한쪽이 옳을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여 반박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단순한 토론이라면, 서로의 의견을 내세우고 둘이 엇갈린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없겠지만, 위와 같이 기한 내로 둘 중 하나를 결정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정말 큰 문제가 될 것이다. 합의점에 도달하기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보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경제적으로 큰 여유가 없다면, 남성이 여성을 강력하게 설득하여 여성이 결국 받아들이고 힘들지만 남성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다. (성별은 반대가 되어도 상관없다. 여기서 말하는 성별은 단지 위에서 소개한 의견을 대표하는 대명사일 뿐이다.) 일단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더라도, 더 많은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라면 첫째가 받을 수 있는 관심은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다. 여유가 없다면, 가족들은 4인 가족을 유지하는 비용을 벌어들이면서, 3명 모두가 장애가 있는 아이 한 명을 위해 개인의 인생을 포기하는 수준으로 희생해야 할 것이다. 아내가 남편을 원망하는 마음을 가슴속에 평생 조금이나마 새겨두고 있더라도 괜찮다. 인간의 생각은 내면뿐만 아니라 주변의 상황에도 상당히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고된 생활이 수십 년 반복되면 가족 간의 화목함이나 유대감 또한 위협받을 위험이 크다. 차악을 선택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꼭 남편과 아내 사이에 논쟁이 있어야만 하는가? 정답은 ‘그렇다’이다. 임신을 계획하는 단계에서 태아의 장애에 대해 아이를 포기하는 쪽으로 의견이 일치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았는데, 곧장 위화감을 느꼈다. 부모는 조건 없이 자식을 사랑해야 한다고 하는데, 장애라는 조건하에 자식을 포기할 수 있다면, 선천적인 장애가 아니라 후천적인 다른 조건으로도 자식을 포기하거나 차별할 수 있는가? 나는 둘 사이의 합리적인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논쟁에서 남편의 의견을 따르기로 합의되는 방향이 가장 이상적이게 되었다.

   



여기까지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내게 현실로 다가오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 현실로 닥치면 나는 다른 입장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현실의 문제가 내게 주는 감정 변화는 내 의사결정 체계에도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남의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는 이유이다.      


이렇게 이성과 감정이 대립하는 형태는 일상의 가벼운 경우를 포함해서 현대인에게 아주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그럴 때 인간이 감정을 무시하고 전적으로 이성에만 의지해 의사를 결정하려 드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감정은 수백만 년의 의사결정이 몸에 누적되어 발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3차 산업혁명이 일고 4차 산업혁명을 바라보는 지금, 인간의 몸에 남아있는 수백만 년의 흔적을 새겼던 사회와 현대사회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감정과 이성을 조화롭게 사용해야만 한다. 우리는 전적으로 한쪽에만 치우쳐서는 현명하게 살아갈 수 없다. 감정과 이성이 적절히 합의를 이루어야 하는 지점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것이 현명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가장 큰 과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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