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덕후 아들과 나
어릴 때부터 동글동글한 것을 좋아하였던 아이.
두 살 때부터 7살때까지 줄창 우주의 행성과 항성, 소행성 등을 좋아했다. 크게 크게 큰 구형을 좋아하다가 영어 과외하러 온 공대 형아에게서 역질문을 받고 얼어버렸다.
“형아 세상에서 가장 큰 별이 뭔지 알아요?”
“응 모르는데…”
“형아 베텔게우스 알아요~ 그거보다 더 큰 ~~~~~”
열심히 7세 아이의 잘난 척을 들어주던 형아는
“그럼 세상에서 제일 작은 건 뭔지 아니?”라고 질문을 하였고
아이는 그 자리에서 먼지, 쇳가루 등을 이야기하다가
“아니~ 가장 작은 건 원자라고 하는 거야” 라는 황당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이는 그날 과외를 마치자 마자 나에게 도대체 원자가 무엇이며 그것의 정체는 무엇이냐고 질문을 하였다. 무려 20년전 대학교 전공 필수 화학시간에 공부하고 내 인생에서 더 이상 쓰지 않는 원자, 분자 등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어야 했다. (화학 성적은 B였다)
원자가 네모나거나 별모양으로 생겼으면 덜 좋아했을까?
이 또한 동그란 모습이였기 때문에 아이는 홀린 듯이 원자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118개의 원자이름과 기호를 외웠으며, 원자 관련된 책들을 읽고, 분자까지 관심을 가졌고 그 관심은 9살이 된 지금까지 계속된다. 아이의 화학(난 원자, 분자 합해서 화학이라고 칭한다) 사랑은 담임선생님들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반친구들에게도 지속적으로 원자와 분자 등을 이야기하여서 ‘화학클럽’이라는 같이 주기율표 외우고, 원자의 특징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는 친구도 2명이나 만들었다.
대단하다. 너의 열정과 집념!!
문제는 나인데 아이의 화학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풀어주기엔 전문지식이 많이 부족하다.
아이는 아이다운 호기심으로 놀이로 이것을 접근하는데, 원자나 분자를 가지고 생각해 보지 못한 것들을 상상해보고 질문을 한다.
“엄마 네온이랑 헬륨이랑 싸우면 어떤 원자가 이길까? 질소랑 산소중 뭐가 더 쎌까?”
“그냥 ~~~도동아~~원자들끼리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낼 순 없을까…”
아이는 각각의 특성을 고려하여 원자, 분자 카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다!!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의 유행아이템인 포켓몬 카드와 비슷한 모습이다.
각 원자와 분자의 능력이 있고, 대표하는 캐릭터가 있으며, 전투시 사용하는 필살기 들이 있다.
118개의 원자수에 맞추어서 카드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하교 후 1시간씩 이 카드를 만드는 데, 하루에 4장~5장을 만든다.
카드를 만들 때 나의 역할은 옆에서 노트북으로 네이버에 접속해 해당 원자와 분자의 성질에 대해서 검색해서 읽어 주는 보조역할이다. 원래는 본인이 보는 책에서 찾아서 하였는데 그러니 필살기 등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없다며 나에게 보조를 맡겼다. 아~ 종이도 칼로 잘라준다.
특히 분자에 대해서는 인터넷에 정보가 많아서 분자 카드를 만들 때엔 꼭 같이 하게 된다.
덕분에 각각의 분자와 원자에 대해서 나도 이제 꽤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러다 오늘은 ‘메탄올’에 대해서 검색하였는데, 메탄올이 친환경선박에너지에 사용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때엔 없던 정보와 지식이다. 20년전 업데이트된 나의 화학 데이터는 너무 구형이다.
아이와 함께 메탄올 카드를 만들고 친환경 선박에너지에 대해서 같이 검색을 하고, 이야기 나누고, 아이가 설명까지 해주면서 더 찾다보니 최종적으로 메탄올 연료를 사용하는 선박을 만드는 국내 조선회사 주식까지 알게 되었다.
그렇다. 좋은 정보였다. 늦게 알아서 안타까운 정보 였다....
아이는 커가면서 어느 순간 내가 상상하지 못한 것에 끌리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어릴 때에는 내가 알려준 지식과 세상만큼 아는 아이였는데, 지금은 더 넓고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하고 알아간다. 아마 나보다 더 넓은 세상 아니면 전혀 다른 세상을 살게 되겠지...
난 아이 덕에 생소한 분야에 대해서 알게 되고, 새로운 것에 점차 익숙해진다.
이미 살아온데로 익숙한 것만을 찾는 나와는 다른 아이의 취향이 반갑다.
아이의 성장이 반갑다. 아이의 성장만큼 나도 좀더 넓은 취향과 다양한 정보를 알게 되고 느리지만 천천히 성장할거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