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여름날의 기억이 찾아왔다
비가 길게 오는 장마가 시작되면 그곳이 어디건 난 감자를 삶고, 껍질을 벗긴 다음, 기름에 튀기듯이 통째로 굴려서 소금에 찍어 먹거나, 설탕을 뿌려서 먹는다.
바삭한 껍질 뒤의 포근포근한 따뜻한 감자의 속살을 한입 베어 물면
내 몸까지 포근포근한 감자가 된 것 같다.
도동이 와도 그 기분을 나누고 싶어 감자를 삶고, 바로 먹겠다는 도동이에게 '잠깐만 기다려.'라고 말하곤 기름에 굴려서 접시에 담아 나누어 먹었다.
"엄마, 어떻게 이렇게 맛있지? 감자는 삶아도 맛있는데 이렇게 먹으니깐 더 맛있다."
"그렇지, 맞아. 그래서 엄마가 이맛을 알려주려고 도동이한테 기다리라고 한 거야."
"응"
도동이는 맛있게 감자를 연달아 2개를 먹고, 다음에도 또 해달라면서 자리에 일어났다.
그리고, 의자를 끌어와서 인덕션 위의 프라이팬을 살펴보았다.
혹시 프라이팬에 손이 데지 않을까 아이를 유심히 살피던 나는 문득 의자 위에서 프라이팬을 살피는 아이의 뒷모습에서 내가 언제부터 이 레시피를 좋아했는지 생각이 났다.
나에겐 2살 터울의 오빠가 있다.
어머니가 우리를 집에 두고 일을 나가신 건 내가 초등학교 1학년부터였다. 팍팍한 살림살이에 가게에 가서 과자를 사 먹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머니는 저녁때쯤에 돌아오시기 때문에 집에 아이들만 있는데, 마땅히 먹을 간식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제철 감자를 한 박스 사 두셨다.
오빠와 내가 감자를 좋아해서이기도 하고, 제철이기에 가격이 저렴해서였으리라.
오빠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도 좋아하는 것 같다.
비가 와서 온 집안이 냉랭하고 꿉꿉하게 찬 기운이 가득하면 오빠는 감자 상자에서 감자를 다섯 알 꺼내서 삶았다. 가스레인지를 켜고, 감자를 깨끗이 씻은 다음에 물을 부은 후 끓였다. 폭폭폭 김이 올라오면 불을 줄이고, 조심조심 뚜껑을 열어서 젓가락으로 '푹' 찔러본다. 잘 들어가면 다 익은 것이다. 잘 익은 감자는 조심조심 앉아서 껍질을 벗기고, 껍질 벗은 감자는 프라이팬 위로 올라간다.
내가 이 과정을 상세히 기억하는 이유는 그 모든 과정을 아이의 눈으로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에게 '언제 먹을 수 있어?'라고 독촉하며 기다렸기 때문이다.
그때에는 내가 오빠보다 어렸기 때문에 내 눈에 안보이던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도동이를 보다 알게 되었다.
나에게 이 모든 것을 해주던 오빠도 '어린이'였다는 것이다.
도동이가 올라선 의자처럼 오빠도 의자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감자를 프라이팬에 올려놓고 조심조심 기름이 튀기지 않도록 감자를 굴리며, 어린 동생에게 감자를 먹이기 위해서 어린이가 하기엔 복잡하고 어려운 그 모든 과정을 묵묵히 해주었다.
그 덕에 나는 이 레시피를 여름철 최고의 별미로,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요리로 기억하게 되었다.
오빠, 고마워.
이 글은 3개월 전에 쓴 글입니다.
다시 꺼내서 쓰게 된 이유는 인천 형제 기사를 읽고 나서 다시 써야겠다 생각해서입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동생의 유년을 지키기 위해서 식사를 준비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슬픈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은 계속해서 살아가 볼 일임을 살다 보면 이 아줌마처럼 지금의 힘듬이 추억이 됨음을 그리고 네 곁에 있는 사람이 너의 고마움을 알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