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말을 멈춰보기로 했다

묵언 수행으로 함께 한 친구와의 오후

by 최미연

우연히 친구와 도시 외곽의 언덕을 오르다가 숨이 가빠져 올라가는 동안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온전히 즐기고 싶은 차원에서이기도 했다. 한 10여분 그렇게 걸었을까. 감탄사를 내뱉는 것 이외에 우리는 달리 말을 나누지 않았다. 그 순간에 머무는 것 자체로 너무 충만했기 때문이다.


언덕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아 마침내 말을 텄을 때 친구에게 제안을 했다. 다음 만남에 조금 더 길게 묵언을 해보는게 어떻겠느냐고. 친구는 내가 그런 제의를 한 것이 너무 반갑고 그런 것에 열린 친구라는 사실이 새삼 더 고맙다고 했다. 우리는 그런 비슷한 결을 나눌 수 있는 사이였다.


그 다음주 금요일, 호숫가에 가기로 했다. 사전에 문자로 조정 할 내용들을 나눴다. 만나는 것부터 시작으로 2시간 정도 묵언하는 것으로 하고 그 이외 것들은 자연스레 흐름에 맡기기로 했다. 묵언이란 개념 자체가 낯선 것은 아니지만 어떤 느낌을 받게 될 지 예측 할 수 없었기에 만남 직전까지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전철역 앞 벤치에 앉아 친구를 기다리다가 그가 나타나자 그 간질간질한 마음이 알 수 없게 쑥쓰러운 미소로 터져 나왔다. 설렘과 긴장 여러 감정들이 입가를 맴돌다가 삼켜졌다. 웃음을 참는 경연대회도 아닌데 혹여나 소리가 혹은 말이 새어나올까 싶어 한동안 서로의 눈을 피한채 앞만 보며 걸었다.


호숫가로 향하는 길엔 나뭇잎이 바람에 부대끼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로 봄이 왔음을 발길 닿는 곳마다 느낄 수 있었다. 어쩐지 평소보다 그 소리들이 더 증폭되서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다. 평소대로라면 친구에게 ‘와. 나무 정말 예쁘다’, ‘새소리 정말 우렁차다’ 등의 감상을 나눴을텐데 묵언 중이기에 그도 내가 보고 있는 이 광경을 함께 누리고 있는 것인지 확인하고자 이따금 표정을 살폈다.


이후 든 생각은 이 경험이 마치 영화관에 가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영화관에서도 대체로 말을 주고 받기보다는 함께 어느 장면들을 동시간대로 지켜보지 않나. 내가 보는 이 광경을 상대도 보고 있다는 공유하는 감각. 그것이 영화관의 본질 중 하나다. 단지 우리는 오늘 그 공간을 영화관 밖으로 확장하기로 한 것이었다.


호숫가에 이르자 나체 문화의 나라, 독일답게 햇빛이 드는 자리에 어느 독일인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나체로 광합성을 하고 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잿빛 하늘의 겨울이 유독 긴 독일이기에 이제는 햇빛만 나면 얼굴을 갖다 들이미는 나로선 더이상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풍경이다. 그렇지만 독일인인 친구는 그 광경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알 듯 모를듯한 미소로 답을 하고 앉을 자리를 찾아 한참을 걸었다.


서로가 더 걷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앉을 곳을 찾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었기에 의문이 담긴 표정을 주고 받으며 상황을 가늠해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사람들이 앉아 쉬고 있는 공간이 나왔다. 게다가 그 곳은 2년 전 여름에 다른 친구와 함께 와 본 호숫가였다. 이 놀라운 반가움을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혼자 감정을 추스리고 이따가 얘기해줄 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어쩐지 바로 내뱉는 것보다 그 감정을 품은 채로 앉아 있으니 별 거 아닐 수 있는 사실이 더 가치가 매겨지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구석 끝 한 나무 아래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서로가 싸온 음식과 음료들을 주섬주섬 꺼냈다. 사전에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늘 주전부리와 마실 것을 싸고 다니는 편이다. 나는 오렌지와 감자칩을 친구는 사과와 쿠키를 가져왔다. 집에서 나서기 전 묵언 수행에 소리가 요란한 ‘감자칩’이 과연 적당한 간식일지를 잠시 고민했지만 친구가 감자칩을 베어무는 순간 둘 사이에 정적이 ‘아작’나자 웃음이 나왔다. 친구는 감자칩에 자꾸 손이 가는지 어느 순간 봉지를 내 옆 구석으로 밀어두며 쑥쓰러운 미소를 지었다.


친구는 조용히 호숫가를 응시했고 나는 고요함 속에 떠오르는 무수한 생각들을 빠르게 일기장에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의 말소리가 끊이지 않았기에 온전한 고요라고 하기엔 무리였다. 그러나 적어도 발성하지 않은 채 상대의 존재를 느끼는 감각이란 편안하면서도 평소 지나쳤을지 모를 생각들을 찬찬히 짚어보게 했다. 친구는 정확하게 귀에 꽂혀 들리는 다른 독일인의 수다가 너무 성가시다고 이후 들려줬는데 묵언을 깨기로 약속한 시간 10분 전 내가 헤드셋으로 들려 준 브라이언 이노의 음악이 모든걸 가라앉혔다고 했다.


대부분의 관계에서 상대와 핸드폰으로 문자를 나누고 혹은 전화를 하고 만나서는 또 많은 정보들을 서로 보여주거나 언어로 공유하는 시대에 산다. 요즘은 특히나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을 소셜 미디어로 실시간 지켜보며 무력감과 피로감에 휩싸이면서도 뒤쳐지지 않고자 강박적으로 정보들을 집어 삼킨다.


친구와 어느 오후, 함께 터득하고 나눈 쉼표의 감각이 알려준 것은 잠깐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고 지금이라는 시간을 함께 감각하는 경험을 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정보와 관례들에 매몰되지 않고 스스로가 혹은 누군가와 어떤 방식들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또 친구와 어떤 꿍꿍이를 벌일 수 있을까라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마치 수업 시간에 선생님 몰래 간식이라도 빼먹는 양 일탈을 향한 기대에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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