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정체성이 변해야 산다

중년을 살아가다 (feat. 스쿠버다이빙)

by 최옥찬

중년, 정체성이 변해야 산다


나는 세 쌍둥이 육아를 하면서도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내가 추구했던 삶의 가치관에 비해 의미 없이 느껴져서 괴로웠습니다. 오랜 기간 난임 부부였다가 기적같이 건강하게 태어난 세 아이들에 대한 감사함을 배신하는 죄책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아이들의 ‘먹놀잠'(먹기, 놀기, 잠자기)와 똥과 오줌을 무한반복적으로 챙겨야 하는 것이 고되기만 했습니다. 무엇보다 내 삶의 가치 중에서 가장 중요시했던 성취감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나날이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졌습니다. 여전히 양육보다는 내가 하는 일에서의 생산성과 성취를 추구하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내 마음속 갈등 때문에 육아가 고통스러웠습니다. 육아로 힘든 시간을 견디기 위해서는 내 삶의 가치들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다시 조정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날이 숨이 막히고 답답해서 살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아빠다

나는 아빠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납득할만한 해답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되풀이했습니다. 예전에 봤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영화를 다시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시간이 해결해주었습니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녀 양육의 가치에 대한 생각들이 쌓이고, 아이들과의 관계 경험이 쌓이고, 양육 경험이 쌓였습니다. 그러면서 나도 아빠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아빠가 되면 좋을지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세 쌍둥이와 함께 하는 삶이 이전보다 머리가 덜 혼란스럽고 마음도 더 안정되었습니다. 물론 중년의 몸은 힘들지만 말입니다. 자녀들이 청소년기인 중년의 지인들은 자녀들과 갈등하고 서먹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녀들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서 위안한다고 합니다. 보통 자녀가 10대인 중년 아빠들은 자녀들이 어렸을 때 일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자녀들과 함께 하면서 즐거운 추억을 충분히 만들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빠들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을 알기 때문에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러다보니 나는 아빠를 찾고 쫓아다니는 지금 시기의 아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세 쌍둥이들이 10대가 될 때, 지금 10대 자녀로 힘들어하는 중년 아빠들보다는 아이들과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왜냐하면 아빠가 어린 자녀들과 정서적으로 긍정적인 관계 경험을 한 시간의 양은 결코 배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남편이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남편으로서의 정체성도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양육에 있어서 이전과 다른 남편 역할이 부여되었습니다. 아내 혼자서 세 쌍둥이를 양육하는 소위 ‘독박 육아’가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 쌍둥이 양육을 아내 혼자서 한다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편으로서의 역할이 이전과는 달라져야 했습니다. 아내와 나는 결혼한 후에 기대하는 부부에 대한 그림이 비슷했습니다. 부부는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같이 살 이유가 없다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결혼 전에 살아온 방식과 삶의 태도가 달라서 결혼 초기에는 서로의 생각 끝까지 가면서 싸웠습니다. 부부 갈등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서로 다른 가치관의 조율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면서 부부로서의 신뢰와 정서적 친밀감이 쌓였습니다. 그런데 세 쌍둥이가 태어나면서부터는 이전의 부부 정체성으로서는 살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의 표현에 의하면 남편으로서 나는 세 쌍둥이 임신과 출산까지는 최고의 남편이었답니다. 그러나 세 쌍둥이를 양육하면서부터 이 사람과 같이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여러 번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편으로서 새로운 정체성이 필요했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부부였지만 연애하듯이 남편과 애인 역할이면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세 쌍둥이 양육을 하기 위해서는 아내의 표현대로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 전우와 같은 역할이 필요했습니다. 세 쌍둥이 양육을 전쟁에 비유하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살아오면서 가장 혼란스럽고 고되고 심지어 아내나 나나 응급실에 몇 번 들어갈 정도의 경험이었습니다. 양육을 하면서 한국이 저출산인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욜로(You Only Live Once)’가 트렌드인 시대에 아이를 양육하는 희생과 고생을 하고 싶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아이의 아이다운 태도 때문에 엄마라는 이유로 들어야 하는 ‘맘충’이라는 비난을 듣고 싶지도 않을 것입니다.


나는 일하는 사람이다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내 직업적 정체성에도 혼란이 왔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왜냐하면 나는 30대 후반에 인생 계획에도 전혀 없었던 심리상담사로 진로를 바꾸면서 충분히 혼란스러워봤기 때문입니다. 주변 40대 중반의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직업적 정체성으로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중년 남자들이 원치 않게 회사에서 나와야 하는 상황이나 회사에서 자신의 입지가 점점 더 좁아지기 때문에 미래를 걱정합니다.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고용이 불안하고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일 것입니다. 그리고 평균 수명이 80세 이상으로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직업 활동을 지속할 수 없는 은퇴 후의 삶이 길어지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중년이 가정 경제를 혼자서 책임지고 있는 경우에는 직업과 관련한 스트레스가 더욱 심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직업 활동을 통해서만 가정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애주기적으로 보면 중년기는 위로는 연로하신 부모님과 아래로는 자녀들을 돌봐야 해서 돈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중년에 경제적인 문제가 생기면 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직업적으로 정년이 보장되고 수입이 안정적인 경우에도 마음이 혼란스러워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청년 때 꿈꾸던 직업적 삶과 현실에서의 직업적 삶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직업을 통해 기대했던 삶과 현실의 차이로 우울함과 무기력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때 삶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적응하지 못하면 외도나 중독(술, 도박 등) 같은 부정적인 일탈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일탈 행동은 무기력한 삶에 정서적으로 자극이 필요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