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을 살아가다(feat. 스쿠버다이빙)
나이가 들다 = 노화와 죽음과 익숙해지다 이해하
중년에는 삶이 유한하다는 팩트인 ‘죽음’을 깊이 생각하는 상황들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지인들을 통해서 ‘부고’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그중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자신의 삶을 다 채우지 못한 것 같은 이른 나이의 죽음은 더 큰 슬픔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내 몸이 이곳저곳에서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면 나에게도 죽음이라는 것이 그리 멀리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렵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 건강을 더욱 신경 써 보지만 실존적인 불안을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청년기와 다르게 내 건강을 챙기는 행위를 통해 죽음의 불안을 마주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갑작스러운 질병 때문에 고통을 심하게 경험하면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감각적으로 느껴보기도 합니다. 몸이 아프고 극심한 통증을 경험하게 되면 건강 문제로는 잔잔했던 마음속 물결이 불안정하게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청년기와 다르게 여러 가지 비합리적인 불길한 예측을 하면서 불안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다가옵니다. 불안이라는 도마뱀 꼬리를 잘라내도 다시 자라서 나타납니다. 청년기에는 몸에 통증이 있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러다가 병을 키웠다는 어머니의 잔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건강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년이 된 나는 청년기와 확연하게 다르게 몸의 아픔을 두렵게 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인의 말대로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봅니다.
사람들은 자연스러운 노화로 인해 순리대로 생기를 잃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가령, 성형외과가 많은 지역에 가보면 예전과 다르게 노화를 거부하라고 외치는 수많은 광고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광고를 보다 보면 현재 내 모습보다 더 젊어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외모가 젊게 또는 어리게 보이고 싶은 욕구는 나이와 성별의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심지어 10대들도 자신이 ‘늙었다’라는 표현을 쓰면서 나이 드는 것을 매우 부정적으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젊어져야 한다’는 성형 광고들을 접하고 집에 와서 세 쌍둥의 볼을 어루만지다 보면 젊어지고 싶은 욕망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예전에 화장품 광고에서 ‘아기 같은 피부’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아기 피부를 만져보니 그 광고가 얼마나 허위 과장 광고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절대 되돌릴 수 없는 자연의 순리입니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나이가 들어가는 모습을 아주 조금 늦출 수 있어 보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절대 되돌릴 수 없는 것을 마치 되돌릴 수 있는 것처럼 쫓는 것은 곧 사라질 연기를 쫓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뷰티 관련 광고를 보면서 미에 대한 환상들이 마치 실상인 것처럼 여기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아름다움에 대한 환상과 실상을 구분하지 못하면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류의 지혜인 철학이나 인문학에서 말하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상투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은 것처럼 저 멀리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드는 것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상실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매우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결국,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나쁜 것이고 부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출생이라는 인생의 처음과 죽음이라는 인생의 끝 사이에서 어느 한 지점을 나타내는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처음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생명선의 길이가 짧고 길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한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대학병원 소아병동을 지나다 머리를 깎고 환자복을 입은 어린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파서 멀리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노인 환자를 볼 때와는 다른 매우 큰 안쓰러움이 생깁니다. 중병의 어린 환자들을 보면 '오래 살아야 되는데 아직 얼마 살지도 못했는데...'라는 연민과 슬픔이 올라옵니다. 그러니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생명선이 길어서 충분히 살고 있는 것이니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사람이 타고난 복 중에서 장수하는 것이 큰 복이라고 합니다. 오래 산다는 것은 나이가 들어가는 노화를 충분히 경험한다는 반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가는 노화의 복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면 조물주가 크게 화낼지도 모릅니다.
노화로 인한 심신의 변화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런데 노화가 결코 즐거운 경험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 내가 '나이가 이렇게 많이 들었나'라고 놀라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걱정도 됩니다. 노화에 대한 인식과 준비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더 큰 충격을 받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현상은 외모에서 많이 드러납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살라는 축복의 말처럼 머리에 흰머리가 점점 더 늘어납니다. 그리고 피부의 탄력이 확실히 떨어집니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몸이 탄탄해 보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피부 노화를 막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피부 노화는 얼굴과 목에 주름살이 점점 더 많이 생기기 때문에 조금만 유심히 보면 금세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얼굴에는 검버섯으로 자라려는 거무스름한 점들도 생깁니다. 이러한 외모의 변화는 오래간만에 만나는 지인들이 더 잘 알아차립니다. 그런데 눈에서 오는 변화는 내가 먼저 알게 됩니다. 중년 지인들은 어느 날 갑자기 '노안'이 왔다면서 한숨을 쉽니다. 노안이 오면 가까운 글씨가 잘 안 보여서 자연스럽게 눈살을 찌푸리게 됩니다. 어는 순간부터 나도 눈이 나빠져간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시력 저하와 함께 어두운 밤에 운전하는 것이 매우 힘들어졌습니다. 또한 몸 이곳저곳 구석구석 관절 등이 아파오기까지 합니다.
중년에는 이처럼 내 몸 전체가 굳이 안내도 좋을 오래 사용한 티를 냅니다. 생각해보면 나는 내 몸을 중년까지 참 오래 사용해 왔습니다. 기계도 오래 사용하면 고장 나듯이 사람 몸도 오래 사용하면 당연히 고장이 나기 시작합니다. 컴퓨터가 사용 주기가 있듯이 사람 몸도 사용 주기가 있습니다. 영구적이지 않은 내 몸이 40년 넘게 살아오는 삶의 중간에 고장 나서 퍼질 수도 있었는데 잘 버티어서 여기까지 달려왔다고 생각하면 참 대견스럽기도 합니다. 중년, 이제부터는 삶의 여정에 속도를 내기보다는 천천히 풍경을 즐기기 위해 속도를 줄여야 할 때구나 싶습니다. 그래야 오래된 자동차가 갑자기 길에서 퍼지는 것처럼 퍼지지 않고 오래갈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자동차도 관리하기 나름에 따라 사람들이 우와 하면서 바라보는 오랫동안 타는 클래식 카가 있듯이 중년의 몸과 마음도 관리하기에 따라 클래식하게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나이가 들어가는 노화의 복을 충분히 누리면서 멋지게 늙어가는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