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버로서의 삶을 시작하다
중년 남자들, 여행을 계획하다
나에게는 청년기에 비슷한 분야에 도전을 했다가 실패를 했던 3명의 지인들이 있습니다. 실패 후에도 오랜 기간 서로의 삶을 나누면서 만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 연민하며 응원하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각자 살아가는 삶의 결이 다 다릅니다. 그러나 인생에서 비슷한 쓴 맛을 맛보았다는 동질감이 있어서 그런지 누구보다 마음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관계입니다. 무엇보다 이 친구들이 뼈아픈 실패 후에도 좌절하지 않고 각자의 능력대로 잘 살아내고 있는 모습에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마흔이 넘어갈 즈음에 만난 어느 날 중년 남자들의 비밀스러운 ‘여행계’를 시작했습니다. 비밀스럽다는 것은 가족이 모르게 여행 경비를 모아서 서프라이즈처럼 여행을 가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여행은 아무나 같이 가면 안 된다는 것을 이미 알만한 나이였지만 경험상 우리의 관계가 아무나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여행지가 험난해서 가족과 함께 가기는 어렵지만 남자들끼리라면 가능한 공통된 버킷리스트 여행지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가 가기로 했던 여행지는 아프리카 케냐였습니다. 야생의 위험이 있는 아프리카에 어린 자녀들과 함께 가기는 어렵겠지만 성인 남자들끼리라면 한 번은 도전하고 싶은 동경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5년 후에 서로의 일정을 조율해서 아프리카 여행을 가는 것을 목표로 매달 조금씩 여행 경비를 모으기로 했습니다. 우리 모두 휴가 쓰고 어쩌고 하면 일정을 맞추어 어떻게든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중년 남자들의 삶이 그렇게 녹록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생각했던 것만큼 함께 여행을 간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중년인 우리에게는 눈치를 봐야 하는 가족과 일터가 있었습니다. 여행을 가자고 호기롭게 시작은 했지만 현실은 호기롭지 못했습니다. 우리 4명이 많은 수는 아니지만 서로 일정을 맞추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가족이 있는 중년의 남자들이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빼내어 여행을 간다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각자 일하는 곳의 상황도 무시하지 못할 변수였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5년 동안 여행 자금은 착실히 모았지만 5년이 지난 후에도 여행을 가지는 못했습니다.
40대 중년 남자가 욜로(YOLO)족처럼 자신만의 삶을 위한 시간을 낸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이 가능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 중년 남자들의 삶은 가정이든 일터이든 고려해야 하는 사람들과 신경 써야 하는 상황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책임져야 하고 보살펴야 하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중년에게 있어서 부모님들과 자녀들은 이런저런 보살핌과 도움이 필요한 대상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4명의 중년 남자들이 각자 삶의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하면서 서로 시간을 맞추어 10여 일이 넘는 여행을 간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웠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가 여행 경비를 모으면서 가고 싶은 여행지를 동경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즐거움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중년 남자들의 낭만적이고 모험적인 여행 계획은 여행 경비를 모으고 갈 곳을 정하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즐거웠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한창 지나고도 가지 못하는 여행 계획과 준비는 회의감을 느끼기에도 충분했습니다.
우리가 처음 여행 가려고 했던 아프리카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 때마다 다른 여행지로 바뀌었습니다. 동경했던 아프리카로의 여행이 위험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전한 여행지가 우리의 여행 목적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페루의 마추픽추에서부터 오로라를 볼 수 있다는 핀란드까지 다양한 여행지를 안주 삼으며 여행을 기대했습니다. 우리는 매달 여행 경비를 차곡차곡 모았고 여행 경비는 충분히 쌓였습니다. 어느새 계획했던 5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떤 곳으로도 여행을 가지 못했습니다.
중년 남자들, 스쿠버다이빙 여행을 가다
여행 경비를 모은 지 7년째 되는 해에 한 친구가 모았던 돈을 빼겠다고 했습니다. 어차피 가지도 못할 여행인데 모았던 돈으로 시계를 사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의 말이 옳았습니다. 그런데 여행 경비로 모았던 돈을 나누어 가진다고 하니 왠지 모를 아쉬움이 크게 들었습니다. 아마 그동안 여행 경비를 모으면서 언젠가는 다 같이 여행을 갈 수 있다는 희망을 마음에 품고 살았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나에게 여행은 그 풍경이 그 풍경인 사막과 같은 무미건조한 중년의 삶에 활력을 주는 오아시스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여행 경비를 나누어 가져 버리면 더 이상 여행을 기대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면 중년의 삶이 더 메말라질 것 같았습니다.
그 친구는 단호했습니다. 여태껏 모은 돈으로 어디든지 여행을 가든지 그렇지 않으면 여행 경비를 나누어 가지자고 했습니다. 때마침 세 쌍둥이 육아로 스트레스와 우울이 심했던 나는 친구의 단호함을 기회로 육아 휴가를 가기로 했습니다. 세 쌍둥이 육아로 소진된 나를 걱정했던 아내가 여행을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여행 다녀와서 아프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붙인 아내에게 너무 고마웠습니다. 아쉽게도 4명이 다 함께 여행을 가지는 못했지만 친구와 둘이 7년 전에 시작했던 모험심 가득한 여행을 갈 수 있었습니다. 여행지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스쿠버다이빙과 바다 거북이 영상을 접했습니다. 바다 거북이를 보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중년의 삶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에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어드밴스 다이버 자격을 취득해서 바다 거북이들과 다이빙을 했습니다. 중년에 다이버로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