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그렇게 육아하는 아빠가 되다

중년을 살아가다(feat. 스쿠버다이빙)

by 최옥찬

나는 결혼도 늦게 했지만 오랜 기간 난임 부부였기 때문에 사십 대 초반에도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사십 대 중반 중년에 세 쌍둥이가 태어났습니다. 세 쌍둥이는 아내 혼자 육아를 감당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세 쌍둥이 육아를 함께 했습니다. 세 쌍둥이 육아를 하다 보니 육체적 과로와 스트레스가 심했습니다. 피로는 계속 쌓이는데 풀리지 않아서 항상 피곤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만사가 귀찮아지는 무기력함과 우울감이 지속적으로 높아졌습니다. 급기야 아이들 세 돌 전후로 해서는 여러 증상이 한꺼번에 나타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 몸이 아프다는 이상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심리상담사인 나를 가장 불안하게 한 것은 공황장애와 같은 증상이 나타나면서부터입니다. 아마도 나는 세 쌍둥이 육아로 인해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세 쌍둥이 육아로 인해 나 자신을 위한 삶을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상실감이 매우 컸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나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 내가 추구했던 삶의 가치관에 비해 의미 없이 느껴져서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왜냐하면 오랜 기간 난임 부부였다가 기적같이 건강하게 태어난 세 아이들에 대한 감사함을 배신하는 죄책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아이들의 ‘먹놀잠'(먹기, 놀기, 잠자기)와 똥과 오줌을 무한반복적으로 챙겨야 하는 것이 고되기만 했습니다. 무엇보다 내 삶의 가치 중에서 가장 중요시했던 성취감을 육아를 통해서는 전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나날이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졌습니다. 여전히 육아보다는 일의 성취를 추구하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내 마음속 갈등 때문에 육아를 하는 것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육아로 힘든 시간을 잘 견디기 위해서는 내 삶의 가치들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다시 조정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날이 숨이 막히고 답답해서 살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 같아서 두렵기도 했습니다.


나는 세 쌍둥이 육아라는 현실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내 혼자 세 쌍둥이 육아를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나는 현실적으로 세 쌍둥이 육아를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세 쌍둥이 육아를 주체성을 가지고 '기꺼이'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내 삶의 최우선 가치가 세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이 되도록 인지적인 조정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아봤습니다. 인간의 지혜가 정수된 인문학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 가장 고귀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내 가치관의 서열을 조정하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내가 현실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이미 성장한 지인들에게 아이를 키우는 일에 대한 가치에 대해서 물어보았습니다. 대부분 엄마들에게만 물어봐서 그런지 아이를 키우는 가치에 대한 질문이 매우 낯설다고 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세 쌍둥이 육아를 하는 내가 당연히 힘든 시기라면서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주변 아빠들에게는 물어볼만한 사람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내가 아는 아빠들 중에는 나와 같은 육아 경험을 해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빠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납득할만한 답을 꼭 찾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되풀이했습니다. 예전에 봤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영화를 다시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모든 것을 시간이 해결해주었습니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쌓이면서 아이들과의 관계 경험이 쌓이고, 실제 양육 경험이 쌓이고, 자녀 양육에 대한 가치들이 쌓였습니다. 그러면서 나도 아빠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아빠가 되면 좋을지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세 쌍둥이와 함께 하는 삶이 이전보다 머리가 덜 혼란스럽고 마음도 더 안정되었습니다. 물론 중년의 몸은 힘들지만 말입니다.


지인들 중에는 자녀들이 청소년기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자녀들과 갈등하고 서먹한 관계가 힘들다고 하소연합니다. 그러면서 자녀들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서 위안을 받는다고 합니다. 보통 자녀가 10대인 중년 아빠들은 자녀들이 어렸을 때 회사에서 일하느라 바빴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즐거운 추억을 충분히 만들지 못했습니다. 아빠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현실을 알기 때문에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아빠를 찾고 쫓아다니는 지금 시기의 아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세 쌍둥이들이 10대가 될 때 나는 10대 자녀로 힘들어하는 중년 아빠들보다는 아이들과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아빠가 어린 자녀들과 친밀한 경험을 한 시간의 양은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 쌍둥이 육아를 하는 아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