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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옥찬 Jun 15. 2023

나쁜 엄마 #2

엄마에 대한 기억의 퍼즐을 다시 맞추자 2

나쁜 엄마 포스터

https://brunch.co.kr/@choiokchan/35

한 사람으로 태어나서 존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엄마라는 존재가 있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실제로 존재하는 엄마가 없더라도 우리는 엄마라는 존재의 몸을 통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분명하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무형의 존재가 엄마라는 존재의 매개를 통해서 유형의 존재인 ‘나’가 된 것이다. 앞으로 과학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새로운 생명의 존재는 여성의 몸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디스토피아 영화 <매드 맥스:분노의 도로>를 보더라도 여성의 몸을 통해서 아이가 태어난다.    

  

누구에게나 생물학적인 엄마는 존재한다. 우리는 그 몸을 향해서 ‘엄마’라고 부른다. 그리고 엄마에게 수식어들을 붙인다. 좋은 엄마 또는 나쁜 엄마로 말이다.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정서적 경험을 하게 한다. 엄마와의 관계를 통해서 아이는 자신이 경험하고 느끼는 정서적인 엄마를 만들어간다. 아이가 생물학적인 엄마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 정서적인 엄마는 아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엄마에게 느끼는 감정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이가 엄마의 몸에게 좋은 감정을 많이 느끼면 심리적으로 좋은 엄마가 된다. 반대로 아이가 엄마의 몸에게 나쁜 감정을 많이 느끼면 심리적으로 나쁜 엄마가 된다. 아이가 만들어 가는 좋은 엄마나 나쁜 엄마를 심리상담학의 애착이론으로 살펴보고 구분할 수 있다. 만약에 아이가 안정 애착 유형이면 좋은 엄마일 것이다. 반대로 아이가 불안정 애착유형이면 나쁜 엄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의 입장에서.       


엄마들이 심리상담학적인 이론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마도 좋은 엄마 되기가 참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심리상담학의 이론은 엄마에게 필요하고 좋은 이야기일지라도 엄마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엄마들이 심리상담학의 잔인한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이 고통스러울 것 같다. 많은 엄마들이 주어진 환경에서 좋은 엄마가 되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데도 나쁜 엄마라고 하니까 말이다.    

  

한국의 사회문화경제 분위기를 잠시 생각해 보자. 심리상담학의 애착이론에서 말하는 좋은 엄마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이 그렇다.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의 삶은 아이와 건강하게 애착하기 어렵게 한다.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이 출근하고 퇴근한 후 아이와 보내는 시간의 양과 질을 상상해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이 안정 애착유형으로 성장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고 엄마들에게 직업을 통한 자기실현을 포기하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지도 않다. 그것은 마치 과거 여성의 교육을 금지하고 차별했던 시대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과 같다.         


한국 사회에서 좋은 엄마와 나쁜 엄마 중 어느 쪽이 되기 쉬운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엄마도 한 사람으로서 주어진 환경의 영향을 받고 반응하는 존재니까 말이다. 게다가 아이의 문제 행동은 전부 엄마 탓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많다. 그러다 보니 발달상 아이의 아이다운 충동성 있는 행동마저도 문제 행동으로만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다. 불편하지 않을 권리를 내세우면서 말이다. 게다가 엄마를 ‘맘충’이라고 부르는 사회 구성원들의 잔인한 시선도 있다. 한국 사회에 드라마 <나쁜 엄마>에 등장하는 조우리 마을 사람들의 공감과 배려의 모습은 없어 보인다.   


드라마 <나쁜 엄마>에 나오는 진영순은 심리상담학적으로 나쁜 엄마이다. 몇 해 전 대학입시로 인한 한국 사회의 병리적인 모습을 보여 준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있었다. <나쁜 엄마> 진영순은 <스카이캐슬>에 나오는 나쁜 엄마들과 비슷하다. 나쁜 엄마들은 자녀의 학업적 성위만을 위해서 지나치게 통제하고 학습을 강요한다. 그러다 보니 자녀의 욕구는 무시하고 억압한다. <나쁜 엄마>의 아들 최강호가 야구를 좋아하지만 TV로 야구 경기를 보거나 친구들과 야구를 하지도 못했다. 최강호는 초중고 시절에 엄마의 목표를 위해서 열심히 공부만 했다. 그리고 최강호는 대학입시와 진로에서 성공했다.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거 아닌가 싶다. 


드라마 <나쁜 엄마>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성인이 된 최강호가 엄마와의 관계를 잔인하게 끊는 장면을 보여준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엄마에게 너무 화가 난 성인 자녀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물론, 드라마에서는 이후에 강호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서 계획적으로 엄마와 관계를 끊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성인 자녀들에게서 엄마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가 매우 오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재 자기 자신의 모습이 못마땅하고 자신의 삶이 못마땅하게 느껴진다면 마음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우울하고 암울한 기분이 자주 들 수 있다. 그렇다면 깊이 생각해 볼 것이 있다. 혹시 엄마의 사랑에 대한 신뢰가 없어서인지 말이다. 엄마와의 신뢰감이나 친밀감이 잘 안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많은 경우 어릴 적 엄마와의 애착 결핍이나 애착 손상 때문일 수 있다. 그런데 심리상담을 하다 보면 알아지는 사실이 있다. 상담실에서 이야기되는 엄마들이 진짜 나쁜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심리상담사로서 엄마들을 만나보면 자녀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지 않는 엄마들은 거의 없었다. 다만, 엄마들이 자녀에게 신뢰감과 친밀감을 주는 애착을 형성하는 시기에 엄마의 삶이 녹록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처음 해보는 엄마로서 자녀 양육에 서툴렀었다. 게다가 엄마의 서툴고 취약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는 드라마 <나쁜 엄마>의 조우리 같은 마을 사람들이 없었다.      


어린아이의 마음이 작동하는 것은 어른의 마음이 작동하는 것과 다르다. 아이의 마음은 어른의 마음에 비해서 취약하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아이는 미성숙하다고 하고 어른은 성숙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어린아이의 마음이었기 때문에 엄마에게 더 크게 상처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어른의 마음으로 엄마에 대한 정서적 경험의 기억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 아이의 마음으로 맞추었던 엄마라는 퍼즐을 어른의 마음으로 다시 맞추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나 자신을 위해서.             



위의 내용을 바탕으로 기고 한 칼럼 보기

https://www.inthenews.co.kr/news/article.html?no=5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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