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탱과 브롱코 모두 말을 지칭한다.
#bronco
최근에 자영업을 회사에서 크루로 전환했다.
그 후에 나는 PD(여기서는 영상 총 책임자 느낌)로 입사했다.
가끔은 데이터를 분석하는고 솔루션을 제안하는 마케터와
디자인 솔루션을 제안하는 디자이너가 되기도 한다.
일종의 아트디렉터의 일과 결이 같은데, 처음엔 이것을 두고 우려했다.
경계가 명확하지 않으면 자유도는 높아지지만 월권과 침권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몹시 보수적 근태 시스템을 갖고있지만 개인에게 스튜디오식으로 책임권을 일임하는 것이 의아했다.
보이지 않는 주인의식과 다른 형태의 체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작은 회사에서 각자가 각자의 PM이 되고 있는 모습은 내게 썩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사실 책임권은 대개 회사에서 안전장치로서 작동한다. (경계가 흐릿한 프로젝트의 책임을 지게 하려는 수단)
하지만 서로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주고 있는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경영자가 직원에게, 직원이 경영자에게 주는 신뢰의 농도는 내게 몹시 생소하다.
내가 여기 오자마자 하려 한 것이 일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책임자와 파이프라인을 설정하는 것이었는데,
위의 내용대로 흘러가니 일종의 유기체와 같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므로 앞선 노파심은 유의미하지 않다.
나는 여기서 머스탱과 브롱코의 차이점이 떠올랐다.
북미에서 길들있 수 있는 말은 머스탱, 길들이기 힘들거나 불가능한 야생마를 브롱코라고 칭한다.
이미 결승선을 정해놓은 기수의 입장에서는 머스탱이 편하겠지만,
길을 개척하고 마음껏 들판을 누빌 수 있는 말의 입장에서는 길들여질 필요가 없다.
마치 브롱코와 같이.
애초에 결승선을 정해놓은 기수는 없으니까.
그 점이 항상 새롭고 틀을 정해놓지 않는 이 회사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머잖아 내 등을 덮고 있는 안장을 풀어헤치고 한 마리의 브롱코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여전히 나는 그러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