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삶에 대해 명료한 언어로 말하기

여성학 교양수업 강의 리뷰 - 아비투스와 해방교육

by 유미 최 사카모토

아침 7시에 알람을 맞췄으나, 눈 떠보니 시계는 7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망했다. 9시 수업 들으려면 8시에는 나가야 하는데. 얼른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는 데 힘이 안 난다.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몸뚱이는 이곳저곳 쿡쿡 쑤셔왔고 특히 아랫배가 묵직하게 아팠다. 주말 내내 아르바이트하며 쌓인 피로와 생리통이 겹친 탓이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이참에 생리 공결 처리를 하고 아주 쉬어 버릴까 싶어질 찰나, 이를 악물고 느슨해지려는 마음을 비정하게 채찍질했다. 정신 차려. 너 이러려고 스물일곱 먹고 대학 들어갔어?


이틀 연속 앞머리만 대충 감고 짐을 챙겨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강의실에 도착하니 9시 12분이었다. 출결 확인 후 강의가 막 시작된 참인 것 같았다. 최대한 조용히 빈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다.

질문하지 않는 한국인의 특성에 대한 몇 가지 영상을 시청한 뒤, 「페다고지」라는 책의 저자이자 브라질 출신 민중 교육자 파올루 프레이리에 대해 배웠다. 「페다고지」는 국내에서 한때 금서로 지정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수요일에 듣는 교양 강의에서도 시대별 금서를 통해 당대 사회상을 엿보고 있기에 금서 이야기가 나오자 반갑고 흥미로웠다. 프레이리에 대한 간략한 정보가 화면에 띄워진 채 교수님의 강의가 계속되었다.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불쑥 한 문장이 눈에 걸렸다.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인간 해방임을 주장"


인간 해방. 그 단어가 목구멍 언저리에 갈고리처럼 걸려 삼켜지지 않았다. 그렇지. 나 역시 해방되고 싶어서 여기에 왔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안한 세상 속 더 불안한 내 삶이 내 무지에서 비롯된 것 같아서, 그게 무서워서. 얇은 습자지처럼 금세 물들고 찢기고, 불어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며 꼭두각시 춤이나 추다 조용히 사라져 주기는 싫어서. 그래서 공부가 하고 싶었다. 세상에 대해, 나에 대해 더 이해하고 배우고 싶었다. 그 앎이 나를 구원해 주고 해방해 줄 거라는 막연한 믿음과 희망을 품고 여기에 왔다.

프레이리에 이어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소개되었다. 부르디외는 "교육계의 자율성은 환상”이라고 말하며, 상속받은 문화 자본의 차이가 학업 성취의 격차로 이어지고, 학교의 계층이 사회의 계층을 재생산한다고 주장한다. 일전에 책에서 본 적 있는 '아비투스' 이론이었다. 부르디외의 주장에 나는 격하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회에 살며 하나둘 나이 먹을수록, 문화 자본의 차이에 따라 사람 간에 격차가 벌어진다는 것을 피부로 절감한다. 내가 어떤 집에서 자고 일어나며, 누구와 대화하고, 무엇을 입고 먹느냐에 따라 차곡차곡 누적되는 경험의 질적 차이에 의해 벌어지는 계급의 격차는 시간과 비례해 점차 커진다. 그걸 개인의 노력으로 따라잡는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상향 계급으로 횡단하려는 자는 스스로 익숙한 환경과 의식에서 벗어나야 하며, 전혀 생각지 못한 부분조차 바꾸고 손 보아야 한다. 말 그대로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바꾸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대학에 발을 들인 지 어언 3주째, 강의를 들을 때면 나는 종종 미세하게 상처 입는다. 강의 내용에 따라 상처의 종류나 깊이 따위가 조금씩 달라지는데, 대개 그것은 내가 겪은 경험이 타인(대체로 교수님)의 입을 통해 다양하게 변주된 언어로 표현됨에 따라 내가 스스로 타자화하여 바라볼 수 있게 되면서 발생한다. 내가 겪은 일이 비단 내 탓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데서 찾아오는 박탈감, 내게 벌어진 일을 학문적 언어로 마주했을 때의 수치심 따위의 감정과 함께.

나는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대학 입시 당시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어, 그러니까, 공부를 안 하거나 못 했던 건 아니었고요, 대학에 가기 싫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게, 왜 그렇게 됐냐면・・・・・・.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던 이유는 나부터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몰랐기 때문이다. 어디까지가 내 탓이고 어디부터가 내 탓이 아닌지, 나는 얼마큼 나를 책망하거나 혹은 억울해야 하는지 몰랐다. 나쁘지 않은 학업 성취도를 가지고 있음에도 도중에 낙오된 나 같은 사람은 주변에 없었기 때문에 내게 벌어진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 같았다. 그저 내가 약하고 못나고 부족한 탓에 버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수치스러워지거나, 억눌린 감정이 북받쳐 왈칵 눈물부터 쏟아내기 일쑤였다. 스물일곱 살이 된 지금에서야 나는, 내가 대학 입시 때 겪은 어려움에 대해 나의 언어로 정리해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가난해서 학원 다닐 돈은 없었지만, 혼자 공부하면서도 학교에서 그럭저럭 좋은 성적을 받았어요. '교과서만 가지고 공부해서 서울대 갔어요' 하는 식의 이야기를 신문이나 뉴스에서 보고, 나도 개천에서 용 나는 신화가 쓰고 싶어서 무턱대고 요령 없이 공부했죠. 하루 세 시간을 채 안 자는데 말리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고삼 때 몸이 완전히 무너졌어요. 앉아 있는 것조차 어려워 공부할 수가 없었어요. 몸이 무너지니까 마음도 무너졌고요. 여태 사활을 걸어 쌓아 올린 모든 게 물거품이 된 기분이었어요. 주입받은 성공신화를 완성하지 못했다는 좌절감에 견디지 못해 입시를 포기했어요. 그 당시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은 없었어요.”


대학 진학을 포기했지만 사회적 성공의 꿈은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늘 상향 계급으로 횡단하고 싶었다. 성치 않은 몸과 정신을 스스로 돌보며, 주어진 삶 속에서 나름대로 치열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거듭 좌절했다. 삶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너무 많은 변수가 존재했다. 나는 작은 체구의 가난한 여성이고, 나의 부모님은 늙고 병들었다. 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나 말고 아무도 없는 환경에서 수많은 물리적・비물리적 폭력에 노출되었다. 폭력과 불평등은 내 몸과 정신에 크고 작은 흉터를 새겨, 나는 불행하고 앞으로도 불행할 것이라는 믿음을 더욱 강화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수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책이 아닌 현실에서, 살아있는 사회와 사람을 만나면서 나와 세상에 대해 많이 배웠다. 지식으로 습득하기 이전에 본능과 감각으로 익힌 생존법이 피부 아래 아로새겨져 있다.


굳이 대학에 오지 않더라도 입에 풀칠은 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요식업이나 서비스업에 종사하거나 어떤 회사에선가 계약직으로 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를 만나 결혼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런 식으로 삶을 꾸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 속에서는 자꾸만 막연한 욕망이 꿈틀거렸다. 아직 못 해본 게 많은데. 궁금한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더 재미있는 일, 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회적 인정도 받고 싶다. 돈도 많이 벌고 싶다. 대학에 다닌다고 그 모든 욕구를 충족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안에 지식을 향한 열망이 남아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많은 이들이 취직하기 위한 중간 과정처럼 대학을 거친다. 사회에서 인정받는 직종에 종사하기 위해 해당 분야의 지식과 기술을 습득한 사람에게는, 남들보다 높은 임금을 받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누릴 가능성이 주어진다. 그런데 나는 가끔, 아니 꽤 자주, 사회적 성취에 대한 욕망이 사회적 약자를 존중하는 일과 상충하는 것처럼 느낀다. 내가 인정받으려면 남들보다 더 뛰어나야 하는데, 그러면 필연적으로 나에 비해 뒤처지거나 소외되는 사람이 생긴다. 내가 대학에서 하고 싶은 공부는 소외된 약자를 돌볼 수 있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지식을 쌓는 일이었다. 그게 진정한 지식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공부에 집중하다 보면 경쟁에 뒤처지고 사회에서 낙오되어 배를 주리게 될까 두렵다. 나는 대학에서 어떤 공부를 해야 할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도 당장 생활비가 급급해 학업과 일을 병행하며 버거워하는 내가 있다.


여성의 몸으로 사회를 살아내며 나에게 안전한 땅이 없다고 느꼈다. 내가 발 디디고 서 있는 땅은 늘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살면서 안전한 땅을 가진 적이 없는 것 같다. 여성 혐오와 폭력이 여성의 삶을 더욱 고단하게 한다. OECD 국가의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이 최하위를 기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남성 중심의 수직적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여성에 대한 성희롱과 성차별과 성폭력이 만연하다. 그러한 사회에서 살아남은 여성은 대게 여성 폭력의 피해 당사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을 방해하는 요소 중에는 통계로 나타낼 수 없는 요소가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하며 여유가 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낸 사회는 성과와 효율을 무엇보다 중시하게 되고, 그러한 사회는 차별받는 약자에 대한 배려나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더욱 어렵게 한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안전한 땅을 가질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그러한 사회를 어떻게 하면 이룰 수 있을지 아직 감이 잡히지 않지만, 나는 최소한 타인에게 안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 사회는 곧 사람의 집합이기도 하니까. 끊임없는 배움을 통해 나의 내면에 내재된 혐오와 차별을 스스로 인지하고 시정하고 싶다. 이는 지극히 작고 소극적일지라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나름의 사회 운동이라고 주장해 본다.

프레이리는 교육자와 피교육자를 통합해 비약적 발전을 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피교육자가 그들 자신을 위한 존재가 될 수 있도록 구조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아직 그의 책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주장이 다소 현실성 없게 들리기도 한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그러한 변혁을, 나아가 인간 해방을 이루고자 했는지 궁금하다. 프레이리와 부르디외의 책을 읽으며 과거의 지식인들은 어떤 방식으로 사회를 바꾸고자 했는지 살펴보고 싶다.


어찌어찌 여태 살아남아 대학생이 된 나에게는 아직 몇 가지 선택지가 존재한다,라는 믿음조차 나의 착각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내 삶의 수많은 문제가 시시때때로 나의 안위를 위협한다. 나를 가까이서 오랫동안 지켜본 친구는 내게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 때로는, 나의 삶을 나의 언어로 기록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내 몫의 역할은 충분히 해낸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언어를 조금 더 명료하게 할 필요는 있겠다. 명료한 언어로 말하지 않으면 나의 이야기는 누구의 귀에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고, 이런 삶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아무도 모른 채 지나칠 테니까. 언어를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도 배움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나는 사라지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아남아 배울 것이다. 그리고 나의 언어로 말할 것이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세상이 나를 어떻게 내몰았는지를. 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또박또박 말할 것이다.




2025.3.20. 대학 입학 첫 학기에 수강한 여성학 교양 수업 에세이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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