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학 교양수업 강의 리뷰 - 혐오, 비인간화 그리고 전쟁
잔인하고 무서운 장면을 보는 게 싫어서 공포영화는 절대 안 보지만, 전쟁 영화가 새로 개봉하면 꼭 챙겨보곤 한다. 좋아서라기보다는 봐야 한다는 당위에 가까운 마음으로 엄숙하게 영화 시청에 임한다. 그렇게 영화관 한구석에서 눈물 콧물 쏙 빼고는 복잡한 얼굴이 되어 나온다. 전쟁 영화에서는 너무 많은 사람이 너무 쉽게 죽고, 인간이 물건처럼 다루어진다. 그런 일이 고작 수십 년 전,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어딘가에선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현실은 영화 속 장면보다 더할지언정 덜하진 않을 것이다.
“약자가 가장 고통받는 것이 전쟁”이라는 교수님의 말에 공감했다. 국가 간 전쟁에 직접적으로 이용되거나, 간접적으로 말려들었으나 제대로 된 보상조차 받지 못한 채 죽어간 약자는 거듭되는 역사 동안 수없이 많았다. 전쟁 영화를 보는 내내, 가까운 이의 죽음 앞에 울고 자기 신체를 훼손당해 신음하는 이들의 처절한 감정과 고통을 내 것처럼 느끼곤 한다. 이건 결코 남의 일이 아니야. 몸인지 정신인지 출처를 알 수 없는 어딘가에서 그런 외침이 들리는 것만 같다.
전쟁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이루어질까? 인종과 언어가 다르고, 국가 간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적국 간의 살상이라면, 지구 공동체 의식이 부재했던 지난날에는 어찌어찌 정당화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물며 같은 민족 간의 학살이라면? 아직 제대로 된 명칭조차 붙여지지 않은 제주 4.3사건의 참상에 경악했다. 7년에 걸친 기간 동안 국가 권력 앞에 수만 명의 제주도민이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무참히 살해당했다.
제주 4.3사건에 동원된 서북 청년단의 이야기가 나오며 슬라이드에 낯익은 이름이 보였다. 성서의 내용을 왜곡해 서북 청년단의 제주도민 학살을 북돋운 한경직 목사. 그는 모교인 보성여자고등학교 초대 이사장을 역임한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건물 1층에는 한경직 목사의 생애와 업적을 전시하는 공간이 있었다. 사진으로 봤던 그의 웃는 얼굴과, 교회 단상에 서서 동족 학살을 부추기는 괴물 같은 그의 모습이 겹치며 등골이 오싹해졌다.
4.3사건 당시, 이는 명백한 국가 폭력 사태임에도 국민을 “빨갱이”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말로 정당화되었고 한다. 빨갱이가 도대체 뭘까? 뭐길래 빨갱이는 국민 취급조차 받지 못한 걸까? 어릴 적 어른들이 장난식으로 빨갱이라는 단어를 쓰는 걸 보고 무슨 뜻이냐고 물었으나 제대로 설명해 주는 이는 없었다. 그 뒤로 나도 빨간 옷을 입은 친구를 볼 때 별생각 없이 빨갱이라는 말로 놀렸던 기억이 난다.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비인간적 행위를 하거나, 심지어 같은 종족을 학살하는 일이 가능한 이유는 적을 인간이 아닌 짐승화 혹은 악마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군과 적군, 선과 악으로 정확히 양분된 이분법의 세계.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나와 타인을 구별 지으려는 시도는 내 안에서도 시시각각 이루어진다. 실제로 나는 조금 전 한경직 목사라는 인간을 악마로 봤다.
아버지가 일본인인 한일 혼혈로서 다수에게 차별당하는 설움을 아는 나는,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지양하려 애쓰며 살아왔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에게 물리적・비물리적 가해를 당했을 때, 특히 상대가 나보다 강자처럼 느껴질 때 나는 쉽게 상대를 비인간화하게 되는 것 같다. 남성에게 성적 차별이나 폭력 피해를 겪었을 때 특히 그렇다. 숱하게 겪은 성폭력 피해 경험을 친구와 나누면서 남성 전체를 싸잡아 일반화하고 “한남”이라며 비하하곤 했다. 또한 내 안에는 사회에서 “사이비”로 일컬어지는 종교, 특히 신천지에 대한 혐오도 있다. 애써 변명 하자면, 나는 신천지가 꾸민 기막힌 상황극과 거짓말에 속은 적이 있으며, 신천지로 인해 소중한 사람과 절연하다시피 했지만・・・・・・. 나와 타자에 대한 구별이 이토록 쉽고 빠르게 이루어진다는 점을 스스로 인지하고 경계할 필요성을 느낀다.
나와 구별되며 비인간화되는 이미지는 다양하지만, 조별 토론을 하며 가장 와닿았던 표현은 “충”이었다. 언제부턴가 “-충”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맘충, 진지충, 네고충 등 상대의 특징 뒤에 단 한 글자를 붙이는 것만으로 간편하게 상대를 곤충화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도 일본인에게 “섬 원숭이”라고 하는 것을 짐승화의 예로 들 수 있겠다.
상대에게 곤충, 짐승의 이미지를 부여하면서 상대는 더욱 멀게 느껴지고, 애초에 상호 이해할 수 없는, 나와 완전히 다른 존재처럼 느껴졌다. 이해는 멀고 오해는 쉽기에 어쩌면 이러한 방식의 비하와 혐오가 가장 손쉬운지도 모른다.
아우슈비츠에서는 수용자들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개수의 변기만을 제공하고, 일부러 고안한 오물 길을 걷게 했다고 한다. 오물이 넘치는 변기에 용변을 보고, 오물 길을 걸어야 했던 수용자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살면서 한 번도 그런 끔찍한 대우를 받은 적 없을 텐데. 그러나 처음에는 괴로워하다가도, 그런 일상이 매일같이 반복되면 차츰 적응하지 않았을까?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응해야만 하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자신들이 겪고 있는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인 폭력에 강제로 납득하게 되지 않았을까? 반대로, 독일군과 SS군은 더러운 오물이 묻은 수용자들을 보며, 그들이 자신과 구별되는 인간 이하의 존재임을 확인하고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지 않았을까? 즉, 오물 길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내의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이 자신과 상대 집단의 위계를 끊임없이 재확인하게 하며 자신의 행위(혹은 자신이 당하는 행위)를 합리화하는 장치로서 고안된 것 같다.
인간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쉽게 악해진다. 내가 겪은 사회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보수적인 성향이었으나, 그들이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들이어서 라기보다는 다들 삶에 여유가 없어 보였다. 여유 없는 사람에게 적을 제시하고 싸움을 부추기는 건 쉬운 일이다. 악은 생각보다 평범하다. 오물 묻은 수용자를 비웃는 독일군 역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을 거다.
강의 전반과 조별 토론에 걸쳐, 다양한 이야기와 경험과 생각이 오가는 와중에 내 안에서 끊임없이 타인과 나를 구별하려는 시도가 일어났다. 이런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이해가 가지 않는 상대를 바라볼 때, 상대가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인지부조화를 해소하고자 하는 뇌의 작용일까? 내 생각에 이러한 작용은 거의 본능적인 영역에서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것 같은데, 이를 교육으로 해소할 수 있을까? 보다 평화로운 사회를 이루고자 한다면 개인은 어떤 자세를 함양해야 할까?
또한 폭력에 대처하는 자세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폭력을 겪은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상대를 악마화하기 더욱 쉬워진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피해자 자신에게도 좋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피해자는 악마화된 이미지의 가해자 집단과 완전히 분리된 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몸과 정신은 생존 본능에 의해 가해자 및 가해자 집단에 대한 두려움을 증폭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피해자는 평화로운 삶을 살기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아직까지 썩 만족스런 해답을 찾지 못했지만, 생존 본능에 우선하는 가치를 좇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폭력 행위자에 대한 처벌과 교화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범죄 행위가 이토록 쉽게 일어난다고 하면, 모든 가해자와 잠재적 가해자를 구별해내고 사회에서 분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가해자가 사회로 복귀하기 위해 어떠한 재사회화 과정을 거쳐야 할까? 또한 가해자의 주변인은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이번 강의 역시 느낌표보다 물음표를 많이 남겼다. 강의가 끝날 즈음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느낌표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2025.3.28. 대학 입학 첫 학기에 수강한 여성학 교양 수업 에세이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