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학 교양수업 강의 리뷰 - 호모 엠파티쿠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인간의 본질이 '공감'이라고 주장하는 흥미로운 이론인 <호모 엠파티쿠스>를 알게 됐다. 근래의 나는 내가 생존을 위해 눈치 보느라 선한 것으로 여겨지는 행위를 해왔다고 생각해, 나의 모든 선행에 대해 회의적이게 된 면이 있었다. 그러나 강의 중 시청한 사회 실험 영상과 제러미 리프킨의「공감의 시대」등을 통해, 어쩌면 나는 인간 본성에 충실한 것뿐일지도 모르겠고 생각하게 됐다.
강의 중 거울 신경 세포가 언급 됐는데, 현재 수강하고 있는 인공지능 교양 과목에서 인공지능과 인간을 구분하는 기준으로써 거울 뉴런이 언급되었던 게 기억났다.
현대 사회는 공감이 요구되는 시대라는 말에 깊게 동의했다. 최근 진화론적 연구에서 ‘감정’이 생존에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밝힌 사실도 매우 흥미로웠다. 시장만능주의와 경쟁주의, 개인주의 폐해 극복방안으로서 감정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최근 읽었던 신영복의 「동양 고전 독법 강의」도 생각났다. 신영복은 동양 고전에서 말하는 ‘인성의 고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성을 고양시킨다는 것은 먼저 ‘기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자기[自己]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닌 것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자기를 키우는 순서입니다. 예를 들면 나의 자식과 남의 자식, 나의 노인과 남의 노인을 함께 생각하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이루어주는 것(成人之美)을 인이라고 합니다. 자기가 서기 위해서는 먼저 남을 세워야 한다는 순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론이 확대되면 그것이 곧 사회적인 것이 됩니다. 동양 사상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로 거론되는 화해(和諧)의 사상 역시 그렇습니다. 화[和]는 쌀(禾)을 함께 먹는(口) 공동체의 의미이며, 해[諧]는 모든 사람(皆)들이 자기의 의견을 말하는(言) 민주주의의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성의 고양이 곧 사회성의 고양이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영복, 「강의」, 42쪽
오늘 참여했던 동아시아 연구소 영스콜라 포럼에서 인간의 본성을 ‘독립’과 ‘자율’이 아닌 ‘의존’으로 보는 창의적인 해석을 접했다. 장애 활동 지원사이기도 한 성공회대 실천여성학과 김수현 연구자는 “우리는 돌봄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의존을 하지 않았다”는 문장으로 발제문 서두를 뗐다. 이 문장은 강의에서 다룬 '공감'의 중요성, 신영복이 강조하는 동양 고전 사상과 함께 생각해 볼 여지가 많은 내용이었다.
또한 공감의 기술적 측면, 즉 공감이 학습될 수 있다는 점 또한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었다. 데이터의 총체인 인공지능조차 꽤나 그럴싸한 공감의 언어를 뱉는다. 이제는 일종의 ‘돌봄’ 기술로써의 공감 교육이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교수님이 짧게 소개한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당신은 부끄러워할 것 없어”,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은 것” 따위의 대사가 인상 깊었다. 영화 예고편 마지막 장면에서 다니엘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 굶어 죽기 전에 항고일 배정을 요구한다"는 문장을 건물 벽에 스프레이로 적는다.
약자 간의 혐오를 조장하는 방식의 정치가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무지하면 쉽게 선동된다는 걸 알기에 여태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최근 대학에 들어와 공부를 쬐끔 하게 되면서 비장한 마음으로 대선 토론을 시청했다. 예상보다 너무 빨리, 모 후보의 공약과 주장이 약자끼리 밥그릇 싸움시키는 갈라치기 그 자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후보의 지지율이 10%가 넘어간다는 현실이 안타까운 한편, 이러한 현상이야말로 팍팍한 사회에 대한 방증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애인 부모가 장애인 자녀의 순수성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는 점도 뼈아팠다. 중고생 시절 종종 반장을 맡곤 했는데, 우리 반에 지적 장애를 가진 학우가 한 명씩 있었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전무했던 당시의 나는, 그들을 그저 배려의 대상이자 순수하고 선한 존재로 바라보곤 했다. 그런 나에게, 내 필통을 훔친 같은 반 장애인 학우가 필통에 적힌 내 이름을 유성펜으로 가리고 그 옆에 자신의 이름을 쓴 뒤 자기 거라고 우기는 경험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동네 빵집에서 아르바이트할 때도, 전동 휠체어를 탄 욕쟁이 여성과 종종 시비가 붙곤 했다. 이제는 장애인과 같이 평생 차별적 대우를 받아온 소수자나 약자가 더 쉽게 악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욕쟁이 여성을 다시 마주치게 된다 해도, 무차별적으로 욕설을 퍼붓는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우리 사회는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장애인을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일단 나부터가 장애인에 대한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느낀다. 강의에서도, 책에서도, 현실에서 더 자주 장애인을 마주치고 싶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장학금 때문에 성적에 대한 부담을 안고 있는 나의 상황 또한 돌아보게 되었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나의 가난과 질병 등의 어려움을 증명하기를 요구 받고, 그럼에도 나에게는 투자 가치가 있음을 지능으로 증명해야만 하는 입장에 놓여 있지만, 장학금 지급 기준 성적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학업을 지속할 방안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최근에는 나의 나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다소 뻔뻔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속 다니엘처럼, 수치스러워하거나 저자세가 되지 않고 당당하게 나의 권리를 구하고 싶다.
2025.5.30. 대학 입학 첫 학기에 수강한 여성학 교양 수업 에세이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