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학 교양수업 강의 리뷰 - 탈코르셋의 한계와 가능성, 구글 베이비
한창 미투 운동과 탈코르셋 붐이 일었던 2018년 당시 나는 스무 살이었다.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가치에 동의하면서도, 일부 급진적 페미니스트의 혐오 발언(어린 남자아이 사진을 두고 한남 유충이라고 부르는 등) 따위로 어느 쪽 편에 서야 할지 도통 갈피를 잡지 못했다. 당시 사귀던 남자는 여성이 군대에 가지 않기 때문에 남성보다 인권이 높다고 말하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나를 강간 및 불법촬영했고, 대학생이던 내 친구는 탈코르셋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흉내 자지 소리를 들었으며, 또 다른 친구네 학교에서는 단체 카톡방에 재학생의 성관계 동영상이 유출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혼란의 스무 살이었다.
획일적으로 강요된 여성 신체 이미지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탈코르셋 운동은 페미니즘 운동 내부에서 큰 가치와 의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탈코르셋 운동 자체가 또 하나의 획일적인 신체 이미지의 우상화 및 강요로 이어질 수 있다. 꾸밈 노동에서 벗어난 여성은 어떤 신체를 갖게 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상상력의 한계, 즉 꾸밈 노동에서 벗어나려는 실천이 사회적으로 남성에게만 허용되어 온 신체 이미지를 여성의 몸에 재현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는 점이 당시 탈코르셋 운동의 한계였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방식의 탈코르셋 운동은 오히려 여성성을 억압하고 남성성을 우월한 가치로 여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여성의 꾸밈 노동에 대한 실제적 보상 체계가 존재한다.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에서조차 우대 조건에 꾸밈 노동을 함의하는 '용모 단정'이라는 말이 따라붙곤 했다.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여성의 이미지를 잘 재현하는 신체는, 그렇지 못한 신체에 비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높은 가치 창출의 기회를 얻는다. 나 역시 외모를 가꿔 사진과 영상에 출연하며 비정기적으로 돈 버는 일을 하고 있다.
또한 여성은 외모를 꾸밈으로써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경제력 있는 남성을 만나 안정적 삶의 기반을 확보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의 꾸밈 노동은 생존권 확보를 위한 합리적인 선택으로써 (비)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측면이 있다. 즉 여성의 탈코르셋이 생존권의 위협으로 이어질 잠재적 가능성이 존재한다.
외모 결정론으로부터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 우리는 스크린에 머무는 시간이 긴 초연결 시대를 살고 있다. 미디어 산업을 축소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다양한 여성의 유형을 미디어에 노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예능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는 다양한 여성의 신체와 여성의 욕망, 공격성 등을 잘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물론 시청률 유치를 위한 특정 이미지 강조 따위의 한계가 분명 존재하지만, 획일화・타자화・상품화된 여성의 이미지에서 벗어난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했다.
OTT 산업 등 미디어 콘텐츠에서도 다양한 여성 캐릭터의 등장과 여성 서사의 확대가 필요하다. 한 가지 이미지가 아닌 다양한 '추구미'를 제안함으로써 외모 결정론에서 부분적으로 탈출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점진적 방식의 탈코르셋 운동의 일환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번 강의에서 새롭게 알게 된 내용 중, 여성 인권 신장의 배경에 냉전 시기 인구 감소책이 있었다는 점이 충격이었다. 세계적으로도 여성의 인권은 그 자체의 윤리적 논의로 발달하기보다 사회적 흐름과 맥락 속에서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이용됐다. 이러한 흐름을 잘 읽어내고, 여성을 출산 기계로 보는 정부 정책에 현혹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3 대륙에 걸친 아기 생산 방식인 "구글 베이비"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된 건 처음이라 정말 큰 충격을 받았는데, 이는 자본주의의 한계와 추악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끝판왕이면서도 인종, LGBTQ 인권 문제와도 얽혀 있는 복잡한 현상이었다. 국가와 인종과 성별 간의 층위에 따라 구조적으로 서열화되고 도구화된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갈 길이 멀게 느껴지지만, 공부하면 할수록 세계 곳곳에서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체제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나고 있음을 느낀다.
최근 다른 강의에서 “자본주의에는 필연적으로 잉여와 실업자가 동반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완벽한 체제는 없다. 다만 현재의 체제는 수많은 모순으로 인한 붕괴를 앞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늘 혼란한 삶의 한가운데에 서있던 자로서 새로운 체제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생존의 위협에 쫓기면서도, 겁도 없이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일에 동참하고 싶다.
2025.6.6. 대학 입학 첫 학기에 수강한 여성학 교양 수업 에세이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