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친일파2 03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리 Sep 11. 2024

침략에 굴하지 않는 민족의 경고

제7 장 의열(6)

 제비 형님과 비슷한 강한 기운을 풍기는 자였다.

 “난 세상에 없는 존재요.”

 나 자신을 숨겨야 하기에 다소 냉정하게 말했다.

 “알고 있소. 어차피 내가 아는 것은 여기 연락처까지요. 그대에게 급하게 전할 것이 있어 직접 왔소. 그대의 일을 줄여주는 일이지. 이런 고마운 사람에게 참으로 박하게 구시는구려. 하하.”

 “미안하오. 거사를 위함이오.”

 풍기는 강한 기운만큼이나 참으로 유쾌한 사람이었다. 의열단원들은 대체로 강한 가운데도 유쾌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에 비해 난 엄청나게 경직되어 있었다.  

 “신궁에서의 일이 끝나면 총독부로 오지 말고 바로 산을 통해 관저로 가시오. 총독부는 이 추산이 혼자서 처리할 수 있으니 걱정 마시고. 난 귀신같은 미끼는 필요 없소. 하하.”

 아주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사내의 인상은 강렬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그는 혼자서 어떤 어려운 임무도 성공적으로 수행할 것만 같은 막연한 믿음을 주었다.



 추산이 경성으로 오는 길은 정말 극적이었다. 그는 폭탄과 권총을 보따리에 싸고 만주 봉천에서 경성까지 가는 열차를 탔다. 국경의 경계를 지날 때 검문은 엄중하였다. 하지만 그건 한인들을 상대할 때뿐이었다. 일본인들에게 검문을 하지 않는 점을 노려 그는 승객 중 어린아이를 데리고 혼자 여행하는 일본 여자에게 다가가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도하였다. 유창한 일본어에 쾌활한 그의 모습은 누가 봐도 그저 잘생긴 일본 학생일 뿐이었다. 폭탄을 들고 거사에 임하는 독립투사가 아니었다. 그는 경성에 도착하여 역을 빠져나올 때까지 마치 젊은 일본 신혼부부인 것처럼 그들과 함께 움직였고 아무도 추산을 의심하지 않았다. 정말 대담하고 유쾌한 그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시작이었다.

 그의 이런 모습은 계속 이어졌다. 그는 전기 수리공으로 변장을 하고 아침 일찍 총독부를 향했다. 한쪽 어깨에 맨 수리 기구를 넣는 가방에는 폭탄이 들어 있었지만 그는 태연하게 전기를 고치러 왔다며 문제없이 총독부에 들어갔다. 그는 바로 이층으로 올라갔고 첫 번째 방인 비서과에 하나의 폭탄을 던졌다. 아쉽게도 불발이었지만 바로 다음 방인 회계과에 나머지 폭탄을 던졌고 관저에서 기다리는 나에게 들릴 정도의 엄청난 굉음을 내며 폭탄은 성공적으로 터졌다. 거사에 성공한 그는 태연하게 계단을 내려오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헌병과 마주쳤다. 유창한 일본어로 위험하니 올라가지 말라며 호들갑을 떠는 그를 폭탄을 던진 주범이라고 생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태연히 총독부를 빠져나와 무사히 베이징으로 복귀하였다.

 그가 던진 폭탄 덕에 나 또한 거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한쪽에서는 엄청난 불길이 일고 다른 쪽에서는 폭탄이 터지자 경비병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밖에서 당황하는 경비병 몇을 저격하고 미친 듯이 달려 건물에 다다르자 있는 힘껏 폭탄을 던졌다. 다행히 폭탄은 제대로 터졌고 그 아수라장을 유유히 떠났다.

 강제 통치의 상징인 조선 총독부와 총독 관저 그리고 조선 신궁을 전부 파괴하였다. 강제 침략에 대한 의열단의 그리고 우리 민족의 경고였다. 우리는 그들의 침략에 굴하지 않을 것이며 끝까지 싸울 것이다. 비록 건물은 다시 지어지겠지만 우리의 의지는 끝까지 꺾이지 않을 것이다. 비록 나의 역할은 여기서 일단락되었지만 우리가 탈취한 무기는 새로운 거사로 이어질 것이다.



 두 달 정도가 흘렀을까.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차가운 경기도 경찰부의 유치장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난 전혀 예상하기 힘든 경찰서 안에서 다음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사를 마치고 도피를 하던 나는 어렵게 의백과 연락이 닿았고 의백은 삼엄해진 경계를 피해 숨어 있을 수 있는 피신처를 마련해 주었다.

 ‘경기도 경찰부의 황 경부를 만나시오.’

 피신처에 관한 의백의 전갈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경찰에게 찾아가라니. 그것도 고위 계급인 경부라니. 순간 의백에 대한 의심까지 들었으나 끝까지 그를 믿어 보기로 했다. 사실 그 외에 딱히 다른 방법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황 경부를 만나서 난 그가 근무하는 경기도 경찰부의 유치장에 들어갔다.

 “여기보다 안전한 곳은 없을 것이오. 힘들더라도 잠시만 버티시오. 때가 오면 찾아오겠소.”

 그 말을 남기고 그는 사라졌다.

 좀도둑과 술 취한 건달 같은 사람들이 20여 명이 갇혀 있던 유치장의 한 구석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황 경부의 말대로 이곳은 안전하였다. 이곳에서 난 유치장에 잡혀온 부랑자의 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렇게 두 달 정도가 흘렀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황 경부가 나를 찾아왔다.

 “모든 것이 들통났소. 지금 빨리 백두산으로 가시오. 그리고 나에 대해서 그 어떤 언급도 하면 안 되오. 아주 중요한 문제니 명심하시오.”

 그는 나를 경찰서 밖으로 데리고 나와서 보내 주고 다시 급하게 경찰서로 들어갔다.



 힘들게 다시 백두산 군영으로 돌아왔다. 놀랍게도 그곳엔 의백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배 고생 많았소이다. 이번 거사로 일본 놈들의 간담이 서늘해졌을 것이오.”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제비 형님 덕분이었소, 의백.”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의백을 보며 제비 형님이 생각나 다소 슬픈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제비 선생의 기백은 백 년이 지나도 우리 민족의 정신에 남아있을 것이오. 너무 슬퍼하지 마오.”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동지를 희생해야 할 수밖에 없었던 지령을 내려야 한 그는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지고 있었다.

 “제비 선생의 의거와 동시에 의열단은 다른 계획을 하고 있었소. 하지만 거사 직전 일본 경찰에게 들통나 아쉽게도 실패를 하였소. 그래서 선배의 다음 임무가 불가피하게 변경될 수밖에 없었소. 한 번 더 부탁드리겠소. 유럽으로 가주시오.”

 의백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조직의 특성상 보안 유지가 생명인 만큼 의열단은 철저히 비밀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제비 형님에게 일본의 모든 눈이 쏠려 있던 시기에 또 다른 대규모 폭탄 거사를 준비할 수 있었다.   

 시작은 뜻밖에도 몽골의 초원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던 한 의사로부터였다. 대암 선생은 의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으로 망명해 의사 생활과 항일 운동을 병행하다 처삼촌인 독립운동가 우사 선생의 권유로 몽골의 수도로 떠났다. 일본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몽골에서 비밀 군관 학교를 세워 독립군 양성을 하기 위해서였다. 자금 문제로 군관 학교의 설립이 무산되었지만 그는 몽골에 남아 의사로서 삶을 살았다. 당시 몽골은 외래 문명과 접촉이 활발해지면서 각종 전염병이 돌고 있었다. 현대 의학의 부족으로 몽골 사람들은 이런 전염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기에 그는 그런 사람들을 놓아두고 떠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의 의술은 많은 사람들을 살렸고 그에 대한 소문이 몽골의 황실까지 닿았다. 그는 몽골 황제의 주치의까지 되었고 그 덕분에 많은 명성과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는 이렇게 모은 자금을 독립운동을 위하여 쓰고 있었다. 그의 병원 또한 러시아, 만주, 중국 본토에서 활동 중인 항일 독립투사의 중간 연락 기점이자 군자금 유통 경로로 활용되었다.

 러시아 혁명 정부가 우리의 독립운동을 위하여 상하이 임시 정부에 거금을 제공했을 때 그는 모크스바에서 상하이까지 이 자금을 운반하는 일을 도왔다. 다시 몽골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린 베이징에서 그는 의백과 처음 만남을 가졌다. 둘은 서로의 인품에 반했고 그 자리에서 대암 선생은 의열단에 가입하였다. 이 만남은 그동안 의백이 가지고 있었던 고민을 해결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전 02화 악귀 들린 제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