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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수 Sep 06. 2024

남편은 세 살짜리 사내아이!

좋은 욕실이 있는 건 아니지만 1인이거나 환자를 데리고 들어가서 샤워할 수 있는 공간이 화장실 옆에 붙어있다. 예전 같지 않게 간병인을 수시로 바꿀 수 없는 코로나 시국에는 절대 필요한 곳이다. 하루 종일 잠만 자다가 금식 후 CT 주사 삽입 시술을 받으러 다녀온 남편은 저녁 식사 후 해열제와 혈압강하제를 투여받으며 잠이 들었다. 그래도 그냥 비울 수는 없고 간호사에게 보고 후 샤워하러 다녀왔다. 옆 침상의 보호자들은 모두 일찍 취침 중이다.


몰타 다녀온 빚 갚는 거야.

괜찮아.

아빠는 이 방식으로

나는 몰타 여행으로

우린 인생 이모작 정산을 하는 거야.

남편은 씩씩하게 일어날 것이다.

우린 이렇게 배워 가는 것이다. 인생에 공짜가 없다는 것도....




밤새 미온으로 걱정했지만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2시간 간격으로 먹이는 약 때문에 간호사가 중간중간 깨워서 남편의 상태를 체크할 수 있었다. 37.8도를 오르내리던 열이 새벽에는 38.2라고 알려준다. 냉찜질해도 된다기에 얼음주머니를 찾았다. 비닐 주머니에 얼음을 담아 수건으로 둘렀다. 얼음은 녹고, 물은 흐르고, 그때 중환자실에서 딸려온 가방 속의 얼음주머니가 생각났다. 많기도 하다. 얼음주머니가 5개나 된다. 중환자실에서 열이 얼마나 높았기에 얼음주머니가 이렇게나 많은 거야. 얼음은 공동 주방 같은 곳의 냉동 얼음기가 있어서 퍼 담아 올 수가 있었다. 주머니 하나로 이리저리 돌려놓다 생각하니 다음엔 두세 개에 담아서 여기저기 놓으면 효과적일까? 너무 갑자기 추워지면 안 될까? 손에 느껴지는 열감으로는 다행히 열이 내려간 듯했다. 열이 떨어지니 자는 거 조차 힘들어하던 남편의 숨소리가 고르게 들린다. 가족 간병의 절실함이 느껴졌다. 열날 때마다 간호사를 부르는 것도 미안한 일이다. 집에서 뒹구는 체온계를 가져와야겠다.

얼음주머니의 녹아버린 물을 버리러 가는데 창문 너머가 밝아오고 있다. 벌써 세 밤을 잤다.


남편이 잠들어 있는 여유로운 시간이다. 남편을 이렇게 온전히 만나는 건 33년 만에 처음이다. 어느 땐가는 아파서라도 옆에 있었으면 하고 바랐던 적이 있다. 하늘이 내 소원을 들어준 것일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아닌 건 아닌 거다.


남편이 잠시 눈을 떴다.

"내가 누구야"

"몰라"

"어쩜 그럴 수 있어! 나를 못 알아보면 어떻게?"

"그냥 그래본 거야. 조인수지 누구야"

"알고 있었어? 장난친 거야? 또 나랑 얘기할래? 잘래?"

"애매하네"

이렇게 대답한다. 웃음밖에 안 나왔다. 어떻게 나랑 얘기할지 묻는 답에 애매하다는 답을 할 수 있지? 남편의 머릿속은 건전지의 용접이 제대로 되지 않아 접지선에 접지봉과 연결이 됐다 안 됐다 하는 것처럼 기억도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모양이었다. 머릿속이 혼돈으로 뒤죽박죽인가 보다. 남편은 겸연쩍었는지 크게 웃더니 병상의 보호자와 이야기한다. 이 병실은 우리 남편만이 가끔 이야기한다. 모두 말을 잃은 듯 조용했다. 6인실 병실 우리 앞 침대에는 연세가 아주 높아 보이는 한 분은 콧줄에, 목줄에 정신도 없으셔서 하늘만 보고 계셨다. 쌀쌀맞은 간병인에 의지해 목으로 연하식을 할 정도인데, 그래도 가족이 온다고 하면 정신이 조금은 맑아지는 기색을 보였다. 대각선 맞은편은 우리 남편보다 한 달 일찍 들어왔다는데 경과는 비슷한 환자이다. 부인이 간병하며 계속 말을 시키고 이야기를 하게 한다. 말을 더듬더듬, 생각과 같이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병실에는 간병인이 넷, 가족 돌봄이 둘이다.


난 이렇게 남편이 회복되길 기다리는 내 마음도 감사했고.

어젯밤 잘자준 것도 감사했고,

내 휴가가 남아서 옆에서 간병하는 것도 감사한 시간이었다. 고마워~

세상에 공짜가 없다.

나를 6개월간 몰타에 보내준 빚을 이렇게 갚고 있으니....

몰타는 남편이 내게 준 선물이자 30여 년간 사기 친 것에 대한 보상! 내가 남편에게 늘 속고 살았다는 표현을 사기당했다고 했다. 늘 바빠하면서 이번 달만 지나면 일찍 오겠다는 약속을 몇십 번이나 어겼는지 모른다.  


호흡기의 담과 가래를 묽게 하는 기계를 떼었다. 오더에서 빠진 모양이다. 하나씩 끝내고 새로운 오늘을 맞이하길 바랐다. 병실에서 환자를 지키는 것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으로 표현해도 될 것 같다. 이틀전 밤에는 열이 높아 병동이 뒤집혔고, 어제는 38.2도로 대체로 잘 지냈다. 정신이 맑을 땐 지인들과 친구들 전화를 연결해 주면 말도 곧잘 하더니 오늘은 나도 못 알아봤다. 그래도 기다리면 나아지겠지. 상태가 더 심했던 대각선 맞은편의 환자는 3주 차라는데 보호자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재활을 다니고 있다.  일 욕심 많은 사람이라 자신의 생명도 일처럼 욕심 내기 바랄 뿐이다.


일이 많고 힘들었던 하루였다.

남편이 오래 자고 있으면 자는 대로 걱정이고, 깨어 있으면 자기 고집대로 움직이려는 걸 제지하려니 힘들었다. 팔에 주삿바늘이 껴 있는데 자꾸 팔짱을 끼기도 하고, 그쪽으로 누워서 눌리거나 피가 역류해 나오기도 했다. 약에 취하고, 하루 종일 누워 지내는 게 힘들었는지 밥 먹는 것도 힘들어했다. 취침 전에 배가 아프다며 소리를 지른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행동이었다. 표현을 못하는 서너 살짜리 어린아이의 행동이었다. 정신이 없고, 인지력이 없는 남편에게 병원 침상이 공중화장실이라고 속였다. 맞은편 어르신 환자간병인이 시끄럽다고 투덜거렸다. 그래도 수 없다. 인지가 없는 남편은 배가 아프다고 큰소리쳤다. 나는 검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조용히 해, 사람들 모두 잠자잖아"

"근데, 배가 아픈데 어떻게? 화장실 갈 거야!"

남편은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는 상황임에도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버르적거렸다. 중환자실에서 10여 일을 있었고, 입원실로 와서도 아직 재활이 되지 않은 터라 걸을 수가 없다. 아직 휠체어도 타지 못하는데 자꾸 화장실을 간다고 하니 남편을 제지하는 게 무척 힘들었다. 한쪽 다리로 남편의 한쪽 다리를 감아서 누르며 못 일어나게 했다.

"여긴 화장실이니깐 그냥 누워서 편안히 똥을 싸면 돼"

"응. 그래?"

"응. 그러니깐, 자기도 여기서 편안히 똥 싸!"

"아니야. 내가 어떻게 이런 데서 똥을 싸!"

"괜찮아. 자, 봐봐. 여기 전부 똥 싸러 온 사람들이야. 모두 창피하니깐 커튼을 치고 있잖아"

이런 정도의 대화를 하는 중에 신호가 온 모양이다. 헐크의 표정으로 나와 대립하던 남편은 할 수 없이 볼일을 봐야 할 상태가 된 듯했다. 30분 정도 어르고 달래서 달걀만 한 귀한 똥을 얻었다. 조금의 똥을 싸고 난 뒤 조용한 코골이를 하며 잠이 들었다. 간병하는 일이 여간 힘들지 않다. 그래도 초기 환자의 간병은 가족이 해야 함이 틀림없다. 나는 남편을 세 살짜리 사내아이라 명명했다. 부지런히 키울 작정이다. 빨리 커서 집으로 가게 될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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