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호흡소리가 길다. 코를 고는 것인지, 가쁜 숨을 쉬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간밤엔 고열과 고혈압, 뇌척수액 빠짐 등으로 문제가 있었다. 지난밤 밤새 힘들었는지 남편은 잠에 빠졌다. 밤 10시, 남편이 잠을 자길래 마트에 다녀오려고 갔다 올게 하면서 얼굴을 만졌더니 얼굴이 불덩어리다. 저녁식사 한지 얼마 안 됐고, 즐겁게 이야기하고 여기저기 통화도 했는데...
급히 간호사를 불렀고 널뛰듯 왔다 갔다 하며 신속히 대응하는 그녀들 틈에 뭔가 문제가 생기나 보다 했다. 열은 39.5도 당뇨수치는 171. 간호사들이 뛰어다니며 감염내과에 의뢰하고, 긴급히 혈압 강하제, 해열제를 투여했음에도 열은 내려가지 않는다. 배에 오줌이 가득 차 있는 것을 기계로 확인했다. 소변줄을 빼내서 혼자 소변을 볼 수 없어서 그런가 하고 소변줄을 다시 끼기로 했다. 한참을 기다려서 비뇨기과 인턴쌤이 왔다. 늦은 시간에 인턴쌤들을 부르는 것은 엄청 미안했다. 하루종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을 봤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환자가 열이 나는 것은 안 좋은 일이기 때문에 보호자로서 나는 어쩔 수가 없었다.
한참만에 나타난 비뇨기과 인턴쌤이 요도에 소변줄을 끼려는 찰나, 뭔가가 삐죽이 밀고 나오는 게 발견되었다. 흔히 링거줄이라고 하는 고무호스, 6cm 정도의 플립이 남편의 요도에서 삐죽이 튀어 나온다. 이건 뭐지? 담당인턴은 큰 소리로 외친다. "이게 왜 여기서 나오지! ICU에서 폴립 발견됐다고 하면서, 아이참~~ 간호사 좀 불러주세요." 본인도 어처구니가 없었던 거였다. 새로운 난리가 났다. 인턴과 그 위의 레지던트들 여러 명이 몰려와서 이리저리 급히 뛰어다닌다. 간호사가 나를 피해 어딘가에 전화를 하니 당직의사가 왔다. 나더러는 나가 있으라 하고... "이건 의료사고 아닌가요?" 내 물음에 당직의사는 냉정을 찾으며 중환자실에서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때 그걸 수술할 것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중환자실에서 환자가 소변줄을 잡아당겨서 비뇨기과에서 엑스레이 찍고 했는데 안 나왔던 것인데 지금 나온 거라고 잘된 거라고 했다. 큰일 날뻔한 일이라며, 다음에 수술이라도 해서 빼내야 하는 거란다. 뭔 말인지 모르겠다. "그럼 그때마저 해결했어야지 왜 있는지도 모르고 일반 병실로 올려 보냈냐" 내가 조용히 따졌더니, 머리가 더 중요해서 그랬단다. 난생처음 본 표정을 한 간호사들과 비뇨기과 의사가 지은 표정을 내가 아는데 말이다. 이것 때문에 열이 난 거면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뇌출혈을 치료해서 살려놓은 남편을 이물질이 몸에 들어가서 생긴 열로 죽일 뻔했다. 의료사고가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후에 의무기록사본을 보니 이 시간에 벌어졌던 내용은 싹 빠져 있었다. 병원이 이렇구나!!
남편의 열은 밤새 오르락내리락했고, 아무리 흔들어도 대꾸를 안 한다. 팔의 부종 때문에 연신 마사지를 했더니 코끼리 다리처럼 터질듯한 부종이 조금은 빠진 것 같다. 열도 내린 것 같고, 다시 남편의 숨소리가 고르게 들린다. 나도 다시 자려고 잠을 청했다. 4시에 투약이 있는데 조금 기다려 보다가 잘까...? 5시가 되니 간호사가 환자들을 돌며 체크를 한다. 혈압 138. 체온 37.2, 남편은 자는 거란다.
날은 또 밝아왔다. 하루 시작은 Vest 덜덜이로 가슴을 압박하는 일이다. 효과가 있을까 싶지만 병원비를 올리는 기계이고, 병원에서 하라는 일이니 기계적으로 가슴에 대어준다. 덜덜이는 가슴을 압박하고 하루에 두 번, 오전 오후에 한다. 폐에 자극을 주어 가래. 객담을 묽게 하는 기계란다. 정신없는 간호사는 하지도 않은걸 자신이 스스로 해줬다고 한다. 오전 내 바빠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으면서 말이다. 병원도 난리다. 간호사들은 힘들어서 이직이 많고, 인원을 보충해 주지 않아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수간호사는 간호사들이 그만둘까 봐 아무 말 못 하고 있다며, 특히 3월은 신입이 대거 들어오는 시기라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열이 내린 남편에게 간호사가 환자분 이름이 뭐예요 하니, "정O영!" 정O영이라고 한다. O영이는 아들인데, 잠결에 O영이를 만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남편은 무의식 중에도 아들이 보고 싶은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