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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수 Aug 23. 2024

병실에서 맞은 하루

벌써 3월 말이구나!

꽃이 피는지 시간이 어찌 는지 이미 카운트하는 것을 놓쳤다. 환자에게 시간마다 약이 나오고 처치를 해야 하는 게 있어 환자와 보호자는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가래, 객담을 묽게 해 준다는 네블라이저를 5시, 9시 2회 하고, 머리를 꿰맨 자리에 진물이 흘러나와 간호사실 옆 처치실에서 몇 바늘을 꿰매었다. 마취도 안 하고 꿰맨단다. 아프겠다. 안 아프게 꿰매주세요! 하며 복도에서 기다렸다.

병원은 처음이라 뭐든 무섭기만 했다. 머리에서 계속 진물이 나온다. 뇌척수액이라는데 어떻게 이런게 나오지?


4월부터 시작하려던 영어학원은 등록을 하지 않은 채 포기하게 되었고, 여행작가학교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포기해야 하나? 아니 포기가 아니고 만약 이번에 못한다면 언젠가로 밀어놓아야 하겠지. 지금 나의 상태를 보면 거의 불가능한 일 일 것 같았다. 병실에서 자는 잠은 환자나 보호자나 쪽잠이다. 이 상태로 새로운 공부를 하러 다닌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내려놓기로 했다.


밤새 수술방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치료하느라 남편은 아침 늦게까지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잠에 빠져있는 걸 어르고 달래서 아침 식사를 하게 했다. 간호사는 환자에게 계속 약을 먹이고 인슐린을 맞아야 하기 때문에 밥을 안 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 나도 입맛이 없다. 어제는 선숙이가 사다준 샐러드로 아침식사를 대신했다. 간병하는 나도 밤새 자다 깨다 했더니 졸렸다.


오늘은 소변줄을 뺐다. 긴 줄이 하염없이 나온다 15cm가량 들어갔을까? 남편은 시도 때도 없이 자고 갓 태어난 아기의 리듬과 똑같았다. 남편이 자는 시간은 조금 여유롭다. 아래 마트에 가서 사 와야 하는 것들이 있다. 물도 사야 하고, 물휴지도 사야 하고, 대형 L size 기저귀도 사야 하고, 종이컵 등 사 올게 많은데 남편이 자는 동안 가는 것도 편치는 않다. 남편이 깨어나 마트에 다녀오겠다고 했더니 지우개로 지우고 있을 테니 다녀오란다.  지우고 있었을까? 차라리 귀엽다. 웃음이 나온다. 지금 상황을 기억 못 해 슬픈 게 아니고 지우개가 지우는 도구라는 것을 아는 것이 기뻤다.


병원 근처에 사는 친구가 구호품을 보내줬다. 병원 근처 숙소에 머물다가 입원실로 바로 오는 바람에 보호자용 이불도 없고, 수건도 슬리퍼도 없다. 누군가 오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원조를 요청할 계획이었다. 이불과 수건만 갖다 달라했더니 편한 파자마와 티셔츠, 슬리퍼, 이불, 칫솔, 딸기 대야(환자 칫솔질)까지 완벽했다. 이리 고마울 데가 없다. 하루종일 위문전화받기가 바쁘다.


친구 희경이가 성원이와 다녀갔다. 남편이 자는 틈을 타서 잠시 1층 로비에 다녀왔는데 포장음식 한보따리를 가슴에 안고 있었다. 마음이 큰 친구다. 두루두루 바쁠 텐데, 여유가 있어서일까 마음도 여유롭다. 다 빚이지만 내가 배워야 할 점으로 머리에 남겨 두었다. 먹는 게 부실할 것 같다며 매콤한 갑오징어를 포장해왔단다. 맛있는 것이긴 했지만 병원 간병인 침상에서 먹기는 불편한 음식이었다. 식사 시간이 지난 시간에 왔기 때문에 많은 양을 옆사람들과 나누지도 못하고 혼자서 세 번에 나누어 먹었다. 먹기에 힘든 음식.. 맛있는 건 음식점에서.. 그래도 많이 고마웠다. 이것 저것 환자의 상태를 묻는 말에 자고 있는것을 보고 두고 온 남편이 걱정되서 불안했다. 혼자만 좌불안석. 한번 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보내고 올라왔다. 다행히 남편은 자고 있었다. 훗날, 환자를 그냥 두고 나가면 위험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선숙이의 구호품과 희경이 갑오징어

저녁 먹고 8시가 조금 넘었는데 열이 난다. 39.5도를 웃돈다. 깜짝 놀랐다. 간호사들 앞에서 펑펑 울었다. 잠시 잠에서 깨어나 휴 하고 한숨을 쉬더니 "아버지(돌아가신)가 따라오지 마래" , "뭐?" "아버지가 따라오라면 따라갈 거야? 절대 안 간다고 말해. 알았지! 남편은 죽음의 문턱을 넘지 않고 돌아왔다. 자는거야? 잠을 자면 눈을 감고 자야지 왜 눈을 뜨고 있어? 뜻 밖의 대답이다. 내가 자기를 버리고 갈지 모르기 때문에 눈을 뜨고 있는 거라고 했다.  자신이 아프면서 왜 이런 말을 한 끝에 웃음을 웃는지 헛헛한 웃음을 보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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