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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제라늄 Feb 16. 2020

희생도 희망이 보일 때 하는 거야

Feat. 오빠 자랑

내 삶에서 가장 슬프고 가장 초라했던 날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남편이 이사를 가버린 후였다. 아무 예고도 없이 아무 동의도 없이, 남편이 시집 식구들과 함께 신혼집에 들어와 자기 물건이란 물건은 싹싹 긁어 트럭에 싣고 떠나버렸던 것이다. 벽에 붙어있던 에어컨까지 떼어가고 없었다. 


처음에는 도둑이 들었던 줄 알았다. 그런데 몇 분 동안 집안을 훑어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 집에 남아 있던 것들은 온통 내 물건들뿐이었던 거다. 양말 서랍도 딱 반절만 비어있었다. 이혼 합의도 하기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친정 부모님이 같은 대전에 살고 계셨지만, 절대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충격이었다. 그 늦은 저녁에 내 전화를 받고 서울에서 대전까지 한 걸음에 달려와 준 오빠 부부는 난장판 같은 공간에서 반쯤 넋이 나간 나를 만났다.




올케언니는 겉옷도 벗기 전에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김치를 꺼내 찌개를 끓였다. 오빠는 생각보다 말이 없었다.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말을 아꼈다. 그렇게 말이 없던 오빠를 처음 보았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이런 꼴로 쓰러져 있는데, 그 속이 얼마나 뒤집어졌을까.


입맛 없다고 곡기를 마다하는 나를 향해 언니는 단호했다. 

안 먹으면 쓰러져요.
아가씨 이거 다 먹기 전에는 우리 안 가요.


숟가락을 놓을 때까지 말이 없던 오빠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제 어쩔 셈이냐?


어쩔 셈이냐니... 살아야지. 대화하고 풀고 설득하고 뭘 해서라도 살아야지. 결혼한 지 1년도 채 안된 스물여덟 살의 나는 이혼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이어졌고 그 이유를 몰라 답답하고 억울했지만, 시집에서 다 내 잘못이라니 그게 뭐가 되었든 나 하나 굽히고 참고 희생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내 대답을 들은 후에도 오빠는 침묵했다. 이 말을 하면서 나는 오빠가 아니라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었고, 이것이 옳은 해답이라고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부부가 집을 나설 때였다. 10년쯤 고민한 듯한 오빠의 목소리가 신중하게 말했다.


희생도 희망이 보일 때 하는 거야.


그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동생에 대한 애정, 걱정, 안타까움, 조언, 격려, 신뢰, 소망이, 순도 백퍼센트로 담겨 있었다. 그의 진심은 고스란히 내 심장까지 전해져 왔다. 그 순간 이후로는 더 이상 세상이 두렵지 않았으니까.


꼬맹이 때부터 든든했던 울 오빠 ^^ (한강에서. Photo by 부모님) 


어린 시절 징글맞게 싸워댔던 두 살 차이 현실 남매지만, 내가 얼마나 그를 좋아하고 많이 존경하는지 울 오빠는 아시는지 모르겠다. 185의 큰 키로 153 동생을 모나미라고 놀리면서도, 미어터지는 만원 버스 속 항상 등 뒤에서 날 보호해주던 오빠와의 등굣길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아시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날 오빠의 마지막 한 마디 덕분에, 이 동생이 삶을 소중하고 건강하게 지켜낼 수 있었다는 것도 아시려나 모르겠다.


우리 오빠 동생이어서 행복하고 감사하다. 

울 오빠 보고 싶다.


가위바위보 져서 오빠 업어주는 중 (Photo by 작은 고모)


그대를 향한 다정한 마음을 씁니다.

- 파리제라늄_최서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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