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바쁘신 와중에도 교회에 나오신 모든 성도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다같이 성경책을 보시겠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마태복음 17장 14절에서 2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돌아가면서 한 절씩 교독 하시겠습니다. 저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때부터 나으니라.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 할 것이 없으리라.
아멘.
아멘.
우리 옆에 앉아계신 성도분들과 인사하시겠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잘 오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을 보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에게는 믿음이 없었던 거로 보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을 나무라십니다. 만일 우리에게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있다면 능치 못할 일이 없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은 믿으십니까?
아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으십니까?
아멘!
할렐루야! 모든 성도 여러분의 믿음대로 될지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합시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나니! 여러분의 믿음대로 우리 하나님께서 모두 다 이루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십시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의 음성을 들으십니다. 기도하는 자가 우리 주님의 응답을 받습니다.
(속으로 생각하기를)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닌 지 오래다. 이제는 나도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울분이 풀리는 것 같구나. 아, 옆에 앉아계신 어머니가 기도를 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신다. 그 모습에 나도 눈물이 난다. 남자가 눈물을 흘리다니, 왠지 부끄럽다. 그래도 다행이다. 사람들이 기도를 하느라 눈을 감고 있구나. 그런데 어머니는 무엇을 위해 이처럼 기도하시는 걸까? 어떤 기도를 하시는 걸까? 대체 누구를 위해 기도를 하시는 걸까? 하나님은 어머니의 기도를 들어주실까? 나도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실까? 나도 하나님을 믿으면 나의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나도 하나님을 믿겠다. 하나님, 나도 하나님을 믿겠습니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 다른 사람들처럼 두 손을 모아 눈을 감아보자.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떠올리며 기도해보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보자. 제발 아버지가 변하시기를 기도해보자. 가족들을 때리지 않으시기를 기도해보자. 술과 도박을 끊으시기를 기도해보자. 어머니가 고생하지 않으시기를 기도해보자. 슬퍼하지 않으시기를 기도해보자. 우리 가정에 평안함이 늘 함께 하기를 기도해보자.
아아, 혼란스럽다! 하나님은 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실까? 나에게는 겨자씨만한 믿음도 없다는 말인가? 대체 믿음이란 무엇일까? 모르겠다. 아무리 성경책을 뒤져보아도 믿음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 목사님에게 찾아가 볼까? 아니다. 그건 이미 해보았다. 목사님은 이미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목에 핏대를 올리고 설명해주셨다. 저 사람은 본인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는 걸까? 정말로 하나님이 있다고 믿는 걸까? 아니면 자신의 직업상, 하나님은 있어야만 하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목사님에게는 나에게 없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는 걸까? 그래서 하나님이 목사님의 기도를 다 들어주시는 걸까? 그래서 목사님은 저렇게 믿음이 굳센 걸까?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신다면, 나의 믿음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 가정은 왜 변하지 않는 걸까? 어머니의 눈물이 부족해서일까? 아버지가 하나님보다 더 강한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내 믿음이 부족해서일까? 기도가 부족해서일까? 죽을 때까지 기도를 해야 하는 거라면, 바뀔 때까지 기도를 해야 하는 거라면, 기도를 안 하는 거랑 대체 무슨 차이가 있다는 말인가? 모르겠다. 정말로 모르겠다. 애초에 종교에 정답이 있기는 한 걸까? 현실은 현실이다. 현실을 바꾸려면 현실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감나무에 걸린 감을 따 먹기 위해서는 두 손을 모아 기도할 게 아니라, 직접 손을 뻗어 열매를 따야 한다. 목사님의 말씀은 귀로 듣기에는 꿀처럼 달콤하지만,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애매하다. 종교는 그 자체로 모순적이다. 논리와 과학으로 움직이는 세상에 종교가 들어설 자리가 존재하기는 할까? 기적이란 인간의 지적 한계에 대한 포장이 아닐까? 우연에 대한 신비주의적 관점이 아닐까? 아무리 성경을 묵상해봐도, 하나님께 기도를 해봐도, 이건 아니라고 외치는 나의 이성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목사님이 말하는 악마의 시험일까? 강퍅한 마음일까? 목사님은 왜 나를 혼내실까? 인간의 이성이 잘못되었을까? 역사적으로 보면 교회가 더 잘못하지 않았나? 머리가 혼란스럽다. 그럼에도 교회에 나오면 마음이 평안해지는 건 사실이다. 내 마음은 왜 평안해질까? 신이라는 절대적인 사랑에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종교가 마약과 다를 게 무엇이란 말인가? 아, 마르크스여, 구도의 선구자여! 당신은 옳았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어머니를 위해 교회에 다녔지만, 앞으로는 나를 위해 교회에 나가지 않겠다.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 없는 믿음을 있는 척하지도 않겠다.
태영아, 어디 있느냐? 교회에 갈 시간이다. 어서 교회에 가자.
어머니, 저는 앞으로 교회에 나가지 않겠습니다.
아니, 왜 그러느냐? 왜 갑자기 교회에 나가지 않겠다는 거냐?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태영아, 하나님을 믿어야 해.
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까? 지금까지 교회에 충분히 다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대체 무엇이 변했습니까? 아무것도 변한 게 없습니다. 오히려 저의 시간과 노력만 날렸습니다. 재물이 날아갔습니다. 만나고 싶지도 않은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지쳤습니다. 인생을 허비했습니다. 그런데도 왜 교회에 나가야 합니까?
태영아,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받는다.
구원입니까? 죽음입니까? 그 얘기는 제발 좀 그만 하세요. 어머니는 공자가 한 말도 모르시나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후 세계를 왜 이야기하려고 하시나요? 설령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죽음 너머의 세계는 알지 못합니다. 기도를 한다고 본인의 눈을 감고 현실을 외면하지 마세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현실을 바라보세요. 아버지가 저렇게 인생을 허비하도록 놔두실 겁니까? 저렇게 살도록 바라만 보실 겁니까? 당하고만 계실 겁니까? 차라리 이혼을 하세요. 어머니는 왜 본인의 행복은 돌아보지 않으신가요?
너 이 녀석,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 나는 다 너를 위해 참고 있거늘.
저를 위해 참으신다고요? 아니, 왜 저를 신경 쓰세요?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아니, 저를 신경 쓰신다면, 아버지와 이혼을 하세요. 저는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을 볼 때마다 괴로워 미칠 것 같습니다. 그런 제 인생이 너무나도 불행합니다. 부모님이 불행하게 사는 걸 매일 보느니 차라리 두 분이 이혼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해야 저의 불행도 사라질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불행한데 제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저보다는 본인의 인생을 먼저 챙기세요. 아닙니다. 제가 잘 못 말했네요. 어머니에게는 본인의 인생이 있기는 합니까? 저에게 자신의 모든 인생과 행복을 투영하고 계시는 건 아닌가요? 제발 부탁이니 그러지 마세요. 부담스럽습니다. 본인의 행복은 본인이 챙기세요. 저는 저의 행복을 쫓고 싶어요.
이 녀석아, 너도 나중에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봐라. 그게 그렇게 되나.
또 그 말입니까? 이제는 지겹습니다. 네, 맞습니다. 저도 나중에 결혼을 하고 자식도 낳겠지요. 그리고 알 겁니다. 우리 부모님이 얼마나 이상한지. 아세요? 다른 부모님은 다릅니다. 매일 같이 방에 틀어박혀 앉아 술과 도박을 하지도 않고, 어머니처럼 아버지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자식에게 집착하는 형식으로 풀지도 않습니다.
태영아. 네 아버지를 너무 미워하지 마라. 네 아버지도 알고 보면 불쌍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네가 교회에 나가야 해. 알았지? 응? 그러니까 엄마랑 같이 교회에 가자. 교회에 가서 기도하자.
아니, 어머니는 대체 매일 놀기만 하는 사람이 어디가 불쌍하다는 겁니까? 대체 얼마나 불쌍하기에 다 큰 어른이 어린아이만도 못하답니까? 그리고 거기서 왜 또 교회가 나옵니까?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를 하라고요? 대체 언제까지 해야 하는 데요? 죽을 때까지 해야 합니까? 그래도 변하지 않는다면요? 그때는 어떻게 할 건데요. 네? 이런 제가 믿음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정신 차리세요, 어머니! 맹목적인 믿음은 인생을 망가뜨립니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인간의 이성 또한 신이 준 겁니다. 이성과 논리를 가지고 현실을 바라보세요. 아아, 답답하네요. 어머니와 대화를 하면 답답하기만 합니다. 어머니는 고지식하고 감정적인 사람입니다. 현실을 너무 모르세요. 같은 인간으로서 이성적인 대화가 불가능합니다. 대체 왜 이러세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네가 그대로 하는구나. 네가 고지식하고 감정적이다. 네가 현실을 모른다, 이 녀석아.
하하하. 어이가 없네요, 어이가 없어.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면 헛웃음만 나옵니다.
내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온다, 이것아. 됐으니까, 빨리 준비하거라. 교회에 가자. 예배 시간에 늦겠다. 너는 무조건 예수님만 붙잡고 기도해야 해. 우리 가족을 구원해 달라고 무조건 기도해야 해. 알았어?
아, 제발 좀! 그만 좀 하세요 어머니. 어머니는 마치 응석받이 같아요. 본인이 바라는 걸 무조건 조르기만 하시니 도저히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짜증만 납니다. 저에게 다시는 교회에 나가라고 말씀하지 말아 주세요. 부부는 닮는다더니, 이제 보니 어머니 역시 아버지와 똑같네요. 자신의 요구만 우기세요. 저는 왜 이렇게 불행할까요? 집에 있으면 답답합니다. 너무나 답답해서 숨이 쉬어지지가 않는다고요! 이대로라면 저는 질식사하고 말 것입니다. 만일 저의 불행이 교회 때문이라면, 교회는 가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데 그게 어찌 신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신의 탈을 쓴 악마입니다. 간교한 말로 사람들을 꼬드겨 사망의 골짜기로 빠뜨리는 악마라구요!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어머니. 본인의 행복은 본인의 손으로 쟁취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어머니에게 주신 이성과 의지로 쟁취하는 겁니다. 그 시대의 사회정신이 어떠하든지, 남들의 시선이 어떠하든지, 외할아버지의 선택이 어떠하였든지, 그걸 따르는 것 역시 어머니 본인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른 모든 결과는 본인이 짊어지셔야 합니다. 잔인한 말이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인생입니다. 네, 맞아요. 본인의 무지로 내린 과거의 잘못된 선택은 바꿀 수야 없겠지요. 하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습니다. 현재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세요.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이세요. 미래에 대한 불안정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타락이나 후회에 대한 두려움을 더 크게 가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아닙니다. 지금까지 제가 했던 말은 모두 잊어주세요. 저는 그저 어머니가 어떠한 선택을 하든, 그래서 어떠한 결과를 짊어져야만 하든, 후회만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알았다. 다 알았으니까, 태영아. 어서 교회에 가자. 우리 태영이만 교회에 나가면 다 해결된다. 알았지?
아아, 나의 인생은 참으로 불행하구나. 부모님과는 도저히 대화가 되지 않는다. 나와 가장 가까운 인생의 선배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구나. 우리 부모님은 왜 이럴까? 부모가 있지만 없는 것만도 못하구나. 무슨 소리냐? 그래도 부모가 없는 것보다는 낫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아, 그 입을 다물어라. 나는 더는 못 견디겠다. 더는 부모님과 함께 살지 못하겠다. 나는 나의 행복을 쟁취해야겠다. 나의 인생을 살아야겠다. 부모님은 이미 자신들의 인생을 선택하셨다. 그러니 어른으로서 각자 본인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짊어져야만 한다. 나 역시 한 명의 인간으로서, 자유의지를 지니고 태어난 생명체로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해야겠다. 나 자신의 행복을 찾아 인생을 개척해 나가야겠다. 그리고 그 결과를 온전히 책임지는 삶을 살아야겠다. 만일 나의 행복과 부모님의 행복이 상충한다면, 나는 나 자신의 행복을 먼저 선택하겠다. 비록 가족일지라도 각자의 인생을 살아야겠다. 아아, 슬프구나, 인생이여! 모든 인간이 자녀로서 겪는 비극이란, 부모의 불완전함을 포용할 인성과 재력을 기를 시간과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