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아버지, 소쿠리 가져왔어요. 창고에 보니까 이거 하나밖에 없던데, 이거 맞지요? 어디에다 놓을까요?
뭐야?
이거 맞냐고요. 아버지가 가져오라고 하셨잖아요.
시끄러―! 고추 담아!
(속으로 생각하기를) 아…… 세월은 흘렀어도 아버지의 성격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어머니는 어떻게 이런 사람과 한평생을 같이 사셨을까? 개인보다는 집단을 중시했던 과거의 사회의식에 영향을 받았던 걸까? 모르겠다. 시대는 변했다. 지금은 집단보다는 개인의 행복이, 나이보다는 좋은 생각이 더 대접을 받는다. 아버지는 옛날 사람이니 내가 이해를 해줘야만 하는 걸까? 아버지가 나를 이해할 수는 없는 걸까? 아버지는 이해심이 없는 사람일까? 시대의 발전에 맞춰 함께 성장하지 못한다면, 본인의 행복만 줄어들지 않을까? 성장을 하지 못한다면, 본인만 손해이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나는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는다. 소쿠리를 가져오라고 말해서 가져왔더니 왜 갑자기 화를 낸다는 말인가?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다는 말인가? 혹시 태풍에 떨어진 고추 때문에 화라도 나신 걸까? 모르겠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화를 내면 떨어진 고추가 도로 붙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아버지를 상대하려니 짜증이 밀려온다. 스트레스가 쌓인다. 아버지의 성질을 마음에만 담아둔다면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될 것 같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어딘가 어긋나 보인다. 정상이 아닌 것 같다. 정신적인 치료와 상담이 필요해 보인다. 저 사람이 아버지만 아니었어도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았을 텐데. 생물학적인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존중해줘야 하는 걸까? 무조건 참는 것만이 정답인 것일까? 부모의 행복과 자녀의 행복이 충돌한다면, 자녀는 어떻게 행동해야 옳은 걸까? 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 부모의 뜻을 받아줘야만 하는 걸까? 아니다. 그러한 인생은 온전한 삶이라 볼 수가 없다. 자신의 행복은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당장이야 작은 분쟁이 일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게 더 행복하다. 후회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 역시 예전에 부모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가. 그러니, 지금까지의 내가 그래 왔듯, 앞으로도 나는 나 자신의 행복을 지켜나가겠다. 아버지가 나의 인권을 침해하도록 놔두지만은 않겠다. 내 생각을 마음에만 담아두지 않고 할 말은 해야겠다.
아버지, 말씀 좀 좋게 해주시면 안 돼요? 제가 안 도와드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말씀하실 필요가 있으세요?
뭐―야? 이놈의 자식이? 시끄러―!
뭐가 시끄럽다고 그러세요?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똑바로 말씀하세요. 왜 그렇게 화만 내세요? 뭐가 그렇게 불만이세요? 왜 그렇게 가족들을 미워하세요? 한평생 가족들을 괴롭히고도 아직도 성에 차지 않으세요? 이제 가족은 저 하나뿐이잖아요. 저에게 화를 내셔서 얻으시는 게 뭐가 있다고 그러세요? 무슨 괴로운 일이라도 있으세요? 혹시 제가 무서우세요?
뭐―야? 뭐가 어째?
왜요? 왜 그렇게 눈에 살기를 띠시는 거죠? 손에 쥔 낫은 왜 또 그렇게 치켜드시나요? 그걸로 제 머리를 내려찍으실 건가요?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르네요. 그때도 아버지는 몽둥이를 그렇게 치켜 드셨었죠. 그리고 제 머리를 내려치셨잖아요.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직도 제 머리에는 그때의 상처가 남아있습니다. 저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시던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그때 아버지는 어머니도 기절하실 때까지 때리셨었죠. 가족들을 그렇게 학대하고도 마음이 편하셨나요? 이 말은 정말로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가 정말 제 친아버지가 맞긴 하나요? 왜요? 기어코 본인의 손으로 자식을 죽여야만 분이 풀리실 건가요? 아버지에게는 마음이란 게 있기는 한가요? 심장이 있기는 한가요? 왜 그렇게 고함을 지르세요? 제 말이 찔리셨나요? 아버지의 살기 어린 눈빛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그게 어디 자식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인가요? 철천지원수도 그렇게 보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 당장 서울로 되돌아가고 싶건만, 두려워서 발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서 아버지에게 등을 보이기가 무섭습니다. 아버지의 손에 맞아죽을까 봐 겁이 납니다. 네! 아버지라면 그러고도 남습니다. 고함 좀 지르지 마세요. 저도 부정하고 싶어요. 하지만 제 머릿속의 기억이 그렇게 될 거라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본인 외에 다른 사람을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는 하나요? 본인의 생존을 위한 도구로밖에 보는 건 아닌가요? 아버지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봐도 소용이 없습니다. 저는 예전의 제가 아닙니다. 몸은 강인해졌고, 정신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지킬 줄도 압니다. 자신의 권리를 방어할 줄도 압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아득바득 노력할 줄도 압니다. 아아악! 눈앞으로 낫날이 스쳐 지나간다. 심장이 놀라 덜컥 주저앉는다. 공포에 질린 육신이 와들와들 떨려온다. 기어이 아버지가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끝까지 싸우자. 나 자신을 방어하자. 나 자신의 자연권을 보호하자.
아버지, 이 손 좀 놓으세요!
야아아―!
아버지!
(속으로 생각하기를) 큰일이다. 아버지의 힘이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다. 노인이라 낫을 쉽게 빼앗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대체 어디에서 이런 힘이 나오는 걸까? 농사꾼의 힘을 너무 쉽게 본 걸까? 아니면, 내 힘이 너무 약한 걸까? 정신 차리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상황이 위험해졌다. 자칫하면 크게 다친다. 이제는 정말 물러설 수가 없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여기서 누구 한 사람이 죽어야만 끝날 수 있는 걸까? 후회가 밀려온다. 차라리 낫을 잡지 않았더라면. 아니다. 차라리 아버지를 상대하지 않았더라면. 아니다. 그게 아니라, 애초에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더라면. 하지만 그랬더라면, 나는 아직도 써지지 않는 소설을 붙잡고 괴로워하고 있었을 텐데. 성장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텐데. 그렇다면 혹시 지금의 상황은 필연적인 운명인 걸까? 운명이란 게 있기는 한 걸까? 인생이란 태어난 순간부터 정해져 있는 걸까? 운명은 확률이다는 말은 진실일까? 모르겠다. 일단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하자. 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을 생각해보자. 큰일이다. 점점 힘이 빠진다. 아버지도 힘이 빠지셨을까?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아버지는 왜 이렇게 힘이 좋을까? 농사를 짓기 때문일까? 내 기억에 아버지는 농사를 짓지 않으셨는데. 아버지는 언제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하셨을까? 내가 집을 나간 뒤부터였을까? 혹시 나 때문에 충격을 받으셨던 걸까? 이 사람에게 그런 감상적인 견해를 적용해도 되는 걸까?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아버지란 사람은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나에게 아버지는 또 다른 미궁이다. 불가사의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다른 아버지들도 우리 아버지와 같을까? 아니면 우리 아버지만 그런 걸까? 다른 가정은 다 행복해 보이던데, 그건 진짜일까? 아니면 표면적인 모습에 불과한 걸까? 모든 가정에는 각자의 우환이 있다고 하던데, 정말일까? 그렇다고 믿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내 인생이 너무나도 불행하다. 인간이란 사회적인 동물이거늘, 부모와의 관계가 단절된 자녀가 어찌 행복할 수 있으랴? 개인의 행복은 충족되었건만, 가족 간의 관계에서는 늘 불행하구나. 할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아버지와의 관계를 바로잡고 싶다. 이러한 아버지라도 나는 여전히 사랑한다. 사랑하고 싶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도 비참하다. 슬프다. 마음속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부자가 서로 낫을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니! 하나뿐인 아들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아버지라니! 아아, 신이여! 악마여! 고독과 적막이여! 그대들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어서 이리 오너라! 여기 너희들이 좋아하는 비극이 있노라. 아아,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리는구나. 신일까? 악마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고독과 적막일까? 아니다. 그들이 아니다. 마을 사람들이다. 언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모여들었을까? 저들이 우리를 향해 뭐라고 외치는구나. 무슨 말인지 들어보고 싶건만, 낫 때문에 그럴 여력도 없다.
아구구―! 누가 좀 말려봐요! 저러다 사람 죽겠네―! 사람 죽겠어―!
잠깐 좀 비켜보셔요, 어르신. 잠시만 지나갈게요. 어이! 거기 젊은 양반, 당신 누구여? 누구길래 시방 우리 마을까지 와서는 난동을 피우는 거시여? 응? 무슨 일이길래 넘의 밭에 들어가서 나이 든 어르신을 괴롭히는 거시여? 당신 강도야? 어? 가만있어 봐. 이럴 게 아니라 당장 경찰을 불러야 쓰것네? 응? 당신, 어디 도망갈 생각일랑은 말어. 당신 얼굴이랑, 어르신이랑 싸우는 모습이랑, 싹 다 이걸로 녹화해 두었응께.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 사람은 누구일까? 덩치가 황소만 하구나. 검은 양복만 입고 있었다면 건달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어라? 어느새 아버지가 손에 힘을 풀었구나. 조금 전까지 두 눈에 쌍심지를 키고 있던 아버지가 지금은 순한 양처럼 변했구나. 그 정도로 이 사람이 무서운 걸까? 아니면, 신뢰하는 걸까? 이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아버지와는 어떤 관계인 걸까? 나는 저 사람에게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솔직히 말해야 하나? 이십여 년 만에 찾아온 아들이 아버지와 낫을 두고 몸싸움을 벌였다고? 그것도 어머니 장례식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그 말을 믿어주기나 할까? 아아, 난감하다. 머리가 아프다.
아들이여.
(속으로 생각하기를) 내가 잘못 들은 걸까? 아버지가 먼저 답하신 게 맞은 걸까? 아버지가 나를 아들이라 소개하다니! 아버지가 그렇게 하실줄은 상상도 못했다. 듣고도 믿기지가 않는다. 오히려 나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잡아떼지나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솔직히 다시 한 번 더 듣고 싶다. 나를 아들이라 소개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다시 한 번 더 들어보고 싶다. 그동안 내가 아버지를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던 걸까? 아버지를 잘 못 보았던 걸까? 모르겠다.
예? 어르신 아들이어요?
그려. 아들이여……
가만있어 봐. 그럼 이거 경찰을 부를 필요가 없것는디? 일단 핸드폰 좀 먼저 끄고…… 어디 보자. 잉. 그라네. 어릴 적 모습이 좀 남아있긴 허네.
네?
햐하―! 하도 오랜만이라 몰라보는 거시야? 나 여그 이장이여. 마을 이장 말이여. 아니, 그렇게 말하믄 못 알아들을런가? 나 영희 아빠여. 박영희. 알 제? 몰라야? 아 왜, 초등학교 때 자네랑 같이 다녔었잖여. 그려. 그 영희 말여. 인자 기억이 좀 나는 가배? 햐햐―. 아따, 못 본 새 많이 커 부렀구마잉. 잉, 그려. 결혼은 했고? 워매, 아직도 안 했시야? 아덜들이 다 컸으면 말여 퍼뜩퍼뜩 결혼들을 혀야지. 아직도 안 하고들 뭐한다냐? 응? 요즘 세대는 다들 그러는 갑다잉? 우리 영희도 아직 안 했시야? 햐하하. 으따, 오랜만에 봉께 방갑네잉. 가만 있어 봐. 긍께 서울서 계속 지내다가 어머니 때문에 내려왔구마잉? 그려…… 하나뿐인 자식잉께 당연히 그래야지. 나도 거기 갔다 왔었어. 아녀~! 동네 사람잉께 당연히 가야제. 그때 갔을 때는 안 보이더만. 나 가고 난 다음에 왔는갑네잉? 그려…… 아무튼 심 내고, 아버지헌티는 잘 혀! 젊은 사람이 나이 든 양반한테 그라믄 쓰나? 잉? 예전에 자네가 알던 그런 양반이 아녀. 딱 봐도 인자는 힘없는 노인이잖여. 그라믄 큰일나! 벌 받어, 그라믄…… 그려. 그럼 쉬면서 혀. 또 봐.
안녕히 가십쇼.
기분이 묘하다. 고향 사람들과의 만남은 신비롭구나. 나의 어린 시절을 아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새삼 내가 집에 돌아왔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그래. 옛말에 수구초심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번에 고향에 돌아온 건 좋은 선택이었다. 덕분에 아버지의 색다른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아버지도 사람이란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라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그토록 가족을 괴롭히던 아버지가 남들 앞에서 나를 먼저 아들이라 소개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그때 봤던 아버지의 얼굴에는 나를 향한 어떠한 원망도, 증오도 보이지 않았다. 밉고 화가 나도 가족은 가족이라는 걸까? 그렇게 증오했건만, 그렇게 미워했건만, 모든 감정들이 눈 녹듯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가족이란 대체 무엇일까? 부모가 무엇이길래, 자식이 무엇이길래, 나는 왜 이토록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는 걸까? 아니다. 정신 차리자. 따지고 보면 별일도 아니었다. 아버지가 아들을 아들이라 소개하는 게 뭐가 그리 대단하다는 말인가? 예상을 벗어난 아버지의 행동에 감동이라도 받은 걸까? 아버지라는 사람에게 부자의 정을 바라도 되는 걸까? 아버지는 평범한 아버지가 아니다. 가끔 그를 볼 때면 사람이 아니라 짐승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성이 부족한, 그래서 지적장애가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서일까? 겨우 몇 마디의 짧은 대화였지만, 나는 아버지보다 마을 이장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마음이 연결되었다고 느껴졌기 때문일까? 소통이 된다고 느껴졌기 때문일까? 사람 사이의 관계란 무엇일까? 하늘이 운명으로 점지해 주는 것일까? 아니면, 노력해서 쌓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둘 다일까? 아니다. 어쩌면 시작만 하늘이 정해주고, 나머지는 사람의 몫일지도 모르겠다. 관계를 가꾸어나가는 건 각자의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노력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하늘이 정해준 운명이란 건 존재할까? 자녀가 부모로부터 태어나는 건 운명일까? 아니면 우연에 대한 의미 부여일까? 그만하자. 그만하고 잠이나 자자. 이런다고 무슨 의미가 있으랴? 아니다. 과연 그럴까? 의미 없는 질문이 존재할까?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질문을 풀기 위해 살아가는 것 아닐까? 질문과 호기심이 없는 삶에 의미가 있을까? 미래가 있을까? 발전이 있을까? 성장이 있을까? 모든 인생이 미궁이라면, 질문과 호기심은 그 길을 인도하는 나침반이 아닐까? 혹시 이건 나 혼자만의 의미부여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왜 호기심이 많을까? 왜 질문이 많을까? 하늘이 정해준 운명일까? 유전적인 본성일까? 후천적인 학습일까? 아니면, 직업적인 영향일까? 작가란 대체 어떤 존재일까?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질문들을 생각하는 사람일까?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질문들을 쫓는 사람일까?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돈이 되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외면하는 질문들에 집착하는 사람일까? 만일 그렇다면, 나는 현재 무슨 질문을 쫓고 있나? 어떤 일에 재미와 호기심을 느끼고 있나? 고향으로 돌아올 때 나는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었나? 자신의 내면에 들끓는 불가사의에 대한 답을 찾았나? 신이여! 악마여! 고독과 적막이여! 환영하라, 여기 우리의 오랜 친구들을 소개하노라. 질문과 호기심이니라. 그들은 우리가 기억하는 시간보다 더 오래전부터 우리와 함께 있었노라.